왜 남자들은 눈 앞의 반찬통을 못 찾을까?

by 박진우

“자기야, 케찹통 어딨어?, 없는데?”

냉장고 문을 연 아내가 말한다.
“여기 눈 앞에 있잖아.”


왜 남자들은 눈앞에 있는 물건을 못 보고,
게임에서는 픽셀 몇 개짜리 적을 기가 막히게 찾아낼까?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이렇다.

남자는 사냥, 여자는 채집에 적합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자는 주변을 훑으며 위치 기반으로 사물을 찾는 데 익숙하고,
남성들은 멀리 있는 목표를 한 번에 포착하는 데 강하다는 설명이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단순화된 버전이고, 현대 인지과학 연구는 보다 정교하다.





‘역할’보다 '주의 전략(attentional strategy)'의 차이다.


진화적으로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했던 주의 전략은
사물을 "정확히 찾는 능력"이 아니라, "위협을 놓치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원거리에서 탐지하고, 움직임에 민감하며 위협 신호에 대해선 과잉 탐지 경향을 보인다.

이 시스템에서는 조금 과하게 감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이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는 비용은 작지만, 적이 있는데 못 보는 비용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의 주의 시스템은 Signal Detection Theory로 보면
판단 기준(criterion)을 낮게 설정하는 방향으로 최적화되었다.

놓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인 구조다.


문제는 이 전략이 냉장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냉장고 안의 물건은 움직이지 않는다.
배경과 색, 형태도 대부분 비슷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위치’인데, 그 위치마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위협 탐지가 아니라 공간과 맥락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과제다.


즉, 남자는 덤벙대서, 여자는 꼼꼼해서도 아니라 인지 과제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물건을 찾는 일과 게임에서 적을 찾는 일은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뇌가 동원하는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


남성의 탐색은 대체로 범주 기반(top-down)이다.

내가 아는 케첩의 전형적 모양은 이렇고, 보통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냉장고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조건과 맞지 않으면 즉시, 없다고 없다고 판단한다.


즉, 케찹을 못찾는 가장 큰 원인은 탐색을 너무 빨리 종료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은 '원래 여기 있었는데, 오늘은 저기에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 탐색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현상은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눈으로 다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 최적화 방향의 차이다.

남성의 시스템은 위험 탐지에 최적화되어 있고, 여성의 시스템은 맥락 유지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남성은 전투, 게임, 위기 상황에서 강하고, 여성은 일상 관리, 변화 감지, 환경 조율에서 강하다.

인간이 탐색하는 다양한 사물들은 서로 다른 인지 전략을 요구한다.

냉장고에는 위협이 없지만, 게임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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