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이를 '이형적 표현(dimorphous expressions)'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이 현상은 인간에게 매우 흔하다.
너무 기뻐서 우는 사람, 너무 민망해서 웃음이 터지는 사람,
그리고 극도로 위협적인 순간에 오히려 미소를 짓는 사람까지.
최근 윤석열에게 사형이 구형되는 장면에서
포착된 짧은 웃음 역시 이 틀 안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 웃음이 여유인지, 냉소인지, 방어인지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지만
적어도 심리학적으로는 이상한 장면은 아니다.
‘Dimorphous’는 원래 생물학 용어다.
같은 종이지만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가 전혀 다른 경우를 뜻한다.
심리학에서 이 개념은 경험하는 정서와 표현되는 정서가 서로 어긋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청개구리 반응이다.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반대로 튀어나온다.
우리에게 이러한 이형적 표현은 의외로 자연스럽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려도
'슬퍼서 우는구나'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조성모에 이어 최근 최욱의 광고 속 대사 “널 깨물어 주고 싶어” 역시
사랑스러움이 공격성 언어로 표현된 대표적인 사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대상을 보면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꽉 껴안거나, 깨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긍정 정서인데 표현은 공격적이다.
이형적 표현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신시내티대학교의 오리아나 아라곤(Oriana Aragón) 교수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상이 더 귀여울수록 오히려 더 강한 공격적 감정을 보고한다.
이 현상은 문화권을 가리지 않는다.
한국의 “깨물어주고 싶다”와 같은 표현은
베트남, 프랑스, 체코, 이탈리아, 영어권에도 거의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형적 표현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형적 표현에 담긴 심리적 기제는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필요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아기를 보면 '귀엽다'는 감정이 듦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보호본능이 일어야 한다.
귀엽다는 감정은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려는 돌봄 행동을 유발할 것이고
보호 본능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맞서 싸울 태세를 준비하게 할 것이다.
즉, 인류의 조상은 어떤 대상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감정이 들 때,
공격적 감정도 함께 유발되어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이형적 표현의 또 다른 핵심은 항상성(homeostasis)이다.
몸이 균형을 유지하려 자동으로 조절하듯, 마음도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 통제 불가능한 위협, 정체성 전체를 흔드는 상황에서는
감정의 쏠림이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이때 웃음은 즐거움의 표현이 아니라 과부하를 낮추기 위한 심리적 브레이크가 된다.
너무 화가 나서 웃고,
너무 억울해서 웃고,
너무 위협적인 순간에 웃는 이유다.
사형 구형이라는 장면은
개인의 미래, 명예, 통제감이 동시에 붕괴되는 상황이다.
이런 순간에 나타나는 웃음은
“괜찮다”는 신호라기보다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면 버틸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 웃음은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신경계의 반사에 가깝다.
물론 그 웃음이
도발인지, 냉소인지, 방어인지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 웃음을 곧바로 여유, 비웃음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 작동 방식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인간의 감정 표현은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조절의 문제다.
강한 감정일수록 표현은 왜곡되고, 엇갈리고, 비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울며,
가장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가장 무심해 보이는 얼굴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약함이 아니라, 살아남아 온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