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설명하라고 하면
놀랄 만큼 논리적이고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왜 그 결정을 했는지, 왜 그때 화가 났는지, 왜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말이다.
문제는 이 설명이 정확하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에게 여러 장의 포스터를 보여주고 하나를 고르게 한 다음,
절반의 사람에게만 왜 그 포스터를 골랐는지 물었다.
이유를 설명한 그룹 VS 설명하지 않은 그룹 중 어떤 그룹이 더 만족할까?
정답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그룹이다.
이유를 설명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급감했다.
왜일까?
사람들은 실제 기준(느낌, 미묘한 호감, 정서적 반응)을 설명할 수 없자
말로 설명 가능한 이유로 바꿔치기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선택 기준은 말로 옮길 수 없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설명 가능한 이유가 새 기준으로 채택된다.
하지만, 실제 만족감의 원천은 달랐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왜 이 포스터를 골랐는지'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다.
'내가 보는 나'는 설명이 가능한 나일 뿐, 실제 행동을 하는 나와는 다를 수 있다.
'내가 보는 나'는 나의 의도와 설명 가능한 이유, 일관된 이야기를 본다.
하지만 이것들은 행동을 만든 원인이 아니라
행동 이후에 구성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남이 보는 나는?
타인은 내 머릿속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 시간이 지나도 행동 패턴이 유지되는지를 본다.
그래서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관찰자가 주체자보다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 둘 다 옳을 수 있다.
의식적으로 점검하고, 사전에 기준을 세우고,
신중하게 통제된 행동이나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보는 내가 더 정확하다.
반면, 통제되지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반응,
무의식적인 행동, 오래 반복된 습관에 대해서는
남이 보는 내가 더 정확하다.
문제는 내가 보느냐, 남이 보느냐가 아니다.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나인지, 기준을 갖고 선택하는 나인지
즉, 어떤 상태의 나를 보느냐다.
오히려 행동을 기록하고, 피드백을 받고, 자신의 설명을 의심할 때
우리는 조금 덜 틀리게 된다.
성숙한 자기 인식이란 '나는 나를 잘 안다'가 아니라,
자기 설명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