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읍과 여주시, 어디가 더 동쪽일까?

by 박진우

지도 없이 생각해보자.
가평읍과 여주시, 어디가 더 동쪽일까?


가평과 여주 모두 경기도에 속하고, 강원도에 인접해 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르다.

가평은 ‘동쪽’, 여주는 ‘남동쪽’ 혹은 ‘중앙’ 어딘가에 위치한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느낌을 근거로 판단한다.

"가평은 여주보다 더 동쪽이야."

그런데 지도를 펼쳐보면 여주는 가평보다 조금 더 동쪽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왜 우리는 그럴 듯하게 틀리냐는 거다.



인간은 ‘좌표’가 아니라 ‘구조’로 생각한다.


인지심리학자 Barbara Tversky는 인간의 사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재구성한다(Tversky, B. (2025). Space to Act, Think, and Create. Annual Review of Psychology, 77.).


우리는 위도와 경도를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수도권–충청권' 같은 범주와, '오른쪽–아래' 같은 방향적 관계를 결합해 머릿속에 지도를 만든다. 문제는 이 지도가 현실의 복사본이 아니라 단순화된 모델이라는 점이다.


Tversky의 고전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도시의 실제 위치보다 그것이 속한 주(state)의 위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기울어진 지형을 머릿속에서 수평, 수직으로 정렬하는 경향이 있다(Tversky, 1981). 그 결과, San Diego(캘리포니아 주)가 Reno(네바다 주)보다 왼쪽에 있다고 실제와는 다른 판단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이 판단은 매우 그럴듯하게 느껴진다(네바다 주가 캘리포니아보다 오른 쪽에 있기 때문에 네바다에 속한 모든 도시는 캘리포니아 주의 모든 도시보다 오른 쪽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


그렇다면, 이러한 오류는 왜 발생할까?


판단 오류는 놀랍게도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Tversky의 연구를 포함한 공간인지 연구는 세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반복적으로 확인한다.

첫째, 위계 기반 추론이다.
상위 범주가 하위 정보를 덮어쓴다. “서울 동쪽 vs 서울 남쪽” 같은 구분이 실제 위치보다 더 강하게 작동한다.

둘째, 정렬과 단순화다.
기울어진 것은 곧게 펴고, 복잡한 관계는 직선과 방향으로 환원한다.

셋째, 관계 중심 처리다.
절대 좌표가 아니라 “오른쪽, 위, 가까움” 같은 상대적 관계로 판단한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우리는 현실과 다르지만 일관된 방식으로 틀리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 오류가 무작위가 아니라 체계적(systematic)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인지는 이렇게 틀리도록 설계되어 있을까?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뇌는 정확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 안에서 생존에 유리한 판단을 빠르게 내리도록 설계되었다.

Herbert Simon이 말한 bounded rationality(제한된 합리성), 그리고 Gigerenzer가 주장한 ecological rationality는 이를 잘 설명한다. 인간은 완벽한 계산 대신 빠르고 간편한 휴리스틱(heuristic)을 사용한다. 이 휴리스틱은 때로 오류를 낳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훨씬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원시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위치 계산이 아니라 빠르게 방향을 잡고 이동하는 것이었다. 먹이를 찾을 때, 포식자를 피할 때, 낯선 환경을 탐색할 때 좌표 기반 계산보다 단순한 구조와 방향 기반 판단이 훨씬 유리했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왜곡된 지도는 결함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을 위한 최적화된 전략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Tversky는 이러한 휴리스틱 기반의 공간적 사고가 창의성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추상적 사고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Tversky는 이를 Spraction (Space + Action + Abstraction)이라고 불렀다.


한 스타트업의 전략 회의 장면이다. 팀은 신규 서비스의 문제를 놓고 한 시간 넘게 토론하고 있었다.

“고객 경험이 끊긴다”, “유입 대비 전환이 낮다”, “브랜드 포지셔닝이 약하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논의는 제자리다. 이 때 한 사람이 화이트보드에 뭔가 그리기 시작한다.

고객 유입, 첫 사용, 재방문, 이탈...

각 단계 사이에 화살표를 그리고, 중간에 하나의 동그라미를 추가하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여기에서 끊기네요.”

Tversky에 따르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완성된 생각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구조를 배치하고, 그걸 조작하면서 생각한다. 즉,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순간,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고가 생성된 것이다.


Tversky는 사람들은 외부에 만든 그래픽과 제스처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 것을 표현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반대에 가깝다. 우리는 표현한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이 창의성을 만든다.


왜냐하면, 공간적 표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선은 애매하고, 연결은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고 재배치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불완전성이 재해석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Tversky는 깔끔하게 정리된 도표보다 지저분한 스케치가 더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열린 구조가 사고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앞서 살펴본 공간적 오류도 다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왜 가평과 여주의 위치를 틀리게 인식할까? 뇌가 공간을 단순화하고 구조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능력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게 한다. 즉, 우리를 틀리게 만드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이 높은 팀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화이트보드를 많이 쓰고, 아이디어를 계속 재배치하고, 구조를 바꾸는 데 익숙하다. 반면에 창의성이 낮은 조직은 문장으로만 논의하고, 보고서로만 정리하고, 완성된 구조를 선호한다.


우리는 공간에서 행동하고 사고하며, 그 과정에서 추상적 사고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창의성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재능이 아니라, 생각을 어설프지만 공간으로 꺼내고 그 구조를 보면서 생각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CARAT이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CARAT은 조직 내 사람의 성격을 단순한 특성 목록이 아니라, 인지적으로 재구성된 지도(cognitive map)로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성격을 그 사람이 가진 행동 특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성격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은 성격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어떻게 구조화했는가에 따라 행동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기회로 보고, 누군가는 위협으로 보고, 누군가는 불공정으로 해석한다. 차이는 성격 자체보다, 그 사람이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있다.


CARAT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장점이 큰 도구다.

자기효능감(E)이 높은 사람은 문제 상황을 실행 가능한 구조로 단순화하고, 빠르게 행동을 선택한다. 그런데, 만약 이 사람이 형평민감성(ES)이 동시에 높다면, 자신의 기여 대비 보상에 대한 불균형을 매우 민감하게 인식할 것이다. 이 때, 같은 상황이 서로 다른 구조로 인식될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은 상황을 '지금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로 볼 것이고, 형평민감성은 '자신이 손해 보고 있는 불공정한 상황'이라고 보게 만들 것이다.


보상이나 인정이 충족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실행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갑자기 동기가 떨어지고, 몰입이 끊기며, 심지어 방어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단순히 '변덕스럽다'거나 '일관성이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이러한 해석을 요인 중심의 나열이 아니라, 아래와 같은 CARAT Map을 그려놓고 판단하면 훨씬 이해가 쉽다. 나는 Tversky가 CARAT에 전해 준 소중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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