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트레스 VS 나쁜 스트레스, 20년의 오해

by 박진우

같은 업무, 다른 반응


월요일 아침, 두 사람에게 동일한 이메일이 도착한다.

"금요일까지 신규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해 주세요."

A는 한숨을 쉰다. '또 일이 늘었네. 기존 업무도 버거운데 이걸 언제 하지?' 그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오후가 되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퇴근 후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B는 잠시 생각한 뒤 캘린더를 연다. '빡세겠지만, 이번에 잘하면 다음 분기 평가에서 어필할 수 있겠다.' 그는 기존 업무 일정을 재배치하고, 제안서 초안 구조를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같은 압박 속에서 그는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활력을 느낀다.


같은 업무량, 그러나 두 사람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질은 완전히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능력의 차이? 성격 차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조직심리학 연구는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석하는 방식이 직무 몰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20년간의 오해: "좋은 스트레스"와 "나쁜 스트레스"라는 이분법


직무 스트레스 연구의 지배적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단순했다. 2000년에 Cavanaugh와 동료들이 제안한 도전-방해 스트레스 모형(Challenge-Hindrance Stressor Framework)에 따르면, 스트레스 요인은 태생적으로 두 종류로 나뉜다.


도전적 스트레서(업무량, 시간 압박, 책임 증가)는 힘들지만 성장과 보상의 기회를 내포하므로 본질적으로 좋은 스트레스다. 방해적 스트레서(역할 모호성, 조직 정치, 복잡한 절차)는 성장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만 소모하므로 본질적으로 나쁜 스트레스다.

도전적 / 방해적 스트레서라는 이분법은 직관적이고 깔끔했으며 조직에도 실용적인 처방을 제공했다. "도전 스트레스는 적당히 유지하고, 방해 스트레스는 제거하라." 지난 20여 년간 수백 편의 논문이 이 프레임을 채택했고, 기업 현장에서도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분류에는 치명적인 빈틈이 있었다.


같은 업무량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이고 누군가에게는 장애물이다


2019년, Mazzola와 Disselhorst는 기존 연구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뒤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Mazzola, J. J., & Disselhorst, R. (2019). Should we be “challenging” employees?: A critical review and meta‐analysis of the challenge‐hindrance model of stress.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40(8), 949-961.).

"연구자가 스트레스 요인의 성격을 사전에 분류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업무 과부하를 생각해 보자. 전통적 분류에 따르면 이것은 도전 스트레스 요인이다. 그러나 만성적 인력 부족 속에서 매주 반복되는 야근은 과연 성장의 기회인가? 반대로, 방해 스트레스 요인으로 분류되는 역할 갈등도 어떤 사람에게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리더십 역량을 키울 기회로 경험될 수 있지 않은가?


전통적 직무 스트레스 모형은 스트레스 요인의 객관적 속성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경험하는 주관적 인간을 방정식에서 빼버렸다. 마치 음식의 맛을 식재료의 화학 성분만으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같은 고추를 먹어도 어떤 사람은 매운맛을 고통으로 느끼고, 어떤 사람은 쾌감으로 느끼지 않는가?


결정적 연구: Al Hajj, Tekleab, & Espejo(2023)의 전환


2023년, Al Hajj, Tekleab, Espejo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연구를 발표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487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5일 연속 일지(diary study)를 수행한 이 연구는, 기존 패러다임에 세 가지 핵심 수정안을 제시했다(Al Hajj, R., Vongas, J. G., Jamal, M., & ElMelegy, A. R. (2023). The essential impact of stress appraisals on work engagement. Plos one, 18(10), e0291676.).


수정 1: 스트레스 요인의 종류가 아니라 해석(평가)이 결과를 결정한다.

연구진은 먼저 스트레스 요인의 유형만으로 직무 몰입을 예측하는 모형을 검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설명력이 0.4%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 요인의 종류를 아는 것만으로는 한 사람이 일에 몰입할지 말지를 사실상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개인의 인지적 평가(cognitive appraisal) 즉, "나는 이 스트레스를 도전으로 느끼는가, 방해로 느끼는가"를 모형에 포함시키자, 설명력이 28.8%로 급증했다. 72배의 차이다.

이 숫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스트레스가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정하는 것은 스트레스의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당신의 뇌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수정 2: "도전 아니면 방해"가 아니라 "도전이면서 동시에 방해"가 현실이다.

전통적 이분법은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이 도전 혹은 방해 둘 중 하나로 경험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는 달랐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을 도전과 방해로 동시에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일터에서 겪는 모든 의미 있는 직무 경험에는 도전과 방해의 요소가 공존한다.


수정 3: "스트레스 마인드셋"이라는 숨겨진 자원

연구의 가장 실용적인 발견은 스트레스 마인드셋(stress mindset)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스트레스 마인드셋이란 "스트레스가 나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긍정적) 혹은 "스트레스는 쇠약하게 만들 뿐이다"(부정적)라는 스트레스의 본질에 대한 메타적 신념이다.

연구 결과, 긍정적 스트레스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방해적 스트레서를 접해도 방해적 해석이 줄어들었다.- 방해적 스트레스 요인에서도 도전적 해석을 더 많이 이끌어냈다.- 방해적 해석이 몰입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효과가 완충되었다.

스트레스 마인드셋은 다른 안경이다. 긍정적 마인드셋이라는 안경을 쓰면, 동일한 장면이 조금 더 밝게 보인다. 어두운 부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밝은 부분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RED(Resources-Experiences-Demands) 모형과 연계


Al Hajj 연구팀의 발견은 독립적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스페인의 조직심리학자 Marisa Salanova가 제안한 RED 모형(Resources-Experiences-Demands)과 연결하면 모형이 완성된다.


Salanova는 2005년에 이미 핵심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기존 JD-R(직무 요구-자원) 모형의 가정처럼 직무 요구(Demands)와 자원(Resources)이 직무 몰입이나 소진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반드시 경험(Experiences)이라는 매개 과정이 존재한다. 자원이 풍부한 사람은 요구를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몰입으로 이어진다. 자원이 부족한 사람은 동일한 요구를 부정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소진으로 이어진다.


Al Hajj 연구팀의 스트레스 평가는 바로 Salanova가 말한 경험의 구체적 실체이며, 스트레스 마인드셋은 Salanova가 강조한 개인 자원의 하나인 셈이다.


결국, 이 연구들을 겹쳐 놓으면 하나의 통합적 원리가 부각된다.


직무 요구가 직무 몰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가진 내적 자원(마인드셋, 자기효능감)이 직무 요구를 어떤 경험으로 변환하느냐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변환된 경험이 당신의 몰입, 에너지, 성과를 좌우한다.


RED 모형의 선순환과 악순환


Salanova의 RED 모형이 제안하는 가장 강력한 개념 중 하나는 나선 역학(spiral dynamics)이다.


상승 나선: 내적 자원(긍정적 마인드셋, 자기효능감)이 풍부한 사람은 요구를 도전으로 해석하고, 그 도전에 몰입하며, 몰입을 통해 성취와 성장을 경험하고, 그 성취가 다시 내적 자원을 강화한다.


하강 나선: 내적 자원이 고갈된 사람은 요구를 위협으로 해석하고, 위축되며, 회피하거나 에너지를 소진하고, 소진이 다시 내적 자원을 약화시킨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취약한 상태에서 같은 요구를 맞이한다.


Al Hajj 연구팀의 5일간의 데이터는 이 나선의 완전한 주기를 포착하기에는 짧지만, 그 시작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인드셋이라는 자원이 평가라는 경험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경험이 몰입이라는 결과를 만든다. 이 경로가 매일 반복되면, 같은 직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두 사람의 궤적은 갈라진다.

문제는, 이 나선이 한번 방향을 잡으면 스스로 가속한다는 점이다. 상승 나선에 올라탄 사람은 자원이 점점 풍부해지므로 나선을 유지하기가 비교적 쉽다. 반면 하강 나선에 빠진 사람은 자원이 점점 고갈되므로 빠져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조직이 이 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스트레스를 다르게 보는 학습이 필요하다.


기존 접근: 스트레스 요인 관리

"방해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고, 도전 스트레스 요인을 적절히 유지하라."

이 접근은 여전히 유효하다. 불필요한 관료적 절차, 모호한 역할 정의, 독성적 조직 정치를 줄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력 0.4%의 세계에 머무른다.


확장된 접근: 스트레스 해석

연구가 보여주는 설명력 28.8%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조직은 스트레스의 객관적 조건뿐 아니라 직원들의 해석 자원에도 투자해야 한다.


첫째, 스트레스 마인드셋 교육.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쁘다"는 사회적 통념을 교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스트레스 반응(심장 박동 증가, 각성, 집중력 상승)이 위협에 대한 공포 반응이 아니라 도전에 대한 준비 반응일 수 있다는 신체적 재해석(somatic reappraisal)을 교육할 수 있다. Alia Crum(2013)의 연구에 따르면, 짧은 마인드셋 개입만으로도 스트레스 반응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


둘째,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appraisal) 훈련.

"이 상황에서 나의 성장 기회는 무엇인가?" "이 어려움이 나에게 어떤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가?" — 이런 질문을 습관화하는 훈련이다. 이는 방해 스트레스까지 도전적 요소를 품고 있음을 인식하는 연습이며, Al Hajj 연구팀이 확인한 "이중 평가"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다.


셋째, 작은 성공 경험 설계.

상승 나선의 시작점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도전적이되 달성 가능한 과제를 설계하여, 성취 경험이 마인드셋과 자기효능감을 강화하고, 강화된 자원이 다음 도전에 대한 해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선순환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리더의 프레이밍(framing)

리더가 업무를 배정하면서 '이것은 누군가는 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과, '이것은 도전적이고, 나는 당신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같은 업무에 대해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낳을 수 있다. 리더는 자신이 인식하든 못하든, 팀원들의 스트레스 해석 프레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해결된다"는 함정


이 연구 결과들을 "마인드셋만 바꾸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몰입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위험하다. Al Hajj 연구팀의 데이터를 자세히 보면, 방해 스트레스 요인은 여전히 방해 평가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였다. 긍정적 마인드셋은 그 효과를 약화시켰을 뿐, 제거하지는 않았다. 만성적 역할 갈등, 조직 정치, 고용 불안정 속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태도 문제로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환경 개선(방해 요인 제거)과 해석 자원 강화(마인드셋·평가 교육)는 대안이 아니라 보완재다. 유해한 방해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해석 자원을 강화하는 것이 설명력을 0.4%에서 28.8%로 끌어올리는 길이다.


스트레스의 효과적 처방전


반세기 전 심리학자 Richard Lazarus는 이렇게 말했다.

"스트레스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개인의 평가에 있다." 이 통찰은 오래전에 제시되었지만, 직무 스트레스 연구가 이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조직 맥락에 정교하게 적용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Al Hajj 연구팀과 Salanova의 연구가 수렴하는 결론은 Lazarus 연구의 뒤를 잇는다.

스트레스는 독도 약도 아니다. 당신의 해석이 그것을 독으로 만들거나 약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해석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조직은 유해한 스트레스 환경을 개선해야 하며, 동시에 직원들이 불가피한 스트레스를 건설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키워주어야 한다. 개인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석 패턴을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이 상황에서 도전의 요소는 무엇인가"를 묻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성장의 연료로 전환하는 해석 능력은 개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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