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가?
“로또라도 당첨되면 좋겠다.”
살다 보면 간혹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말할 때도 있지만 주변 사람으로부터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로또에 당첨되면 정말 행복할까요? 아마 로또 당첨은 우리 삶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순식간에 늘어난 재정적 여유로움은 생활 수준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자존감도 높여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로또에 당첨된 후, 더 불행해진 사람들의 뉴스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진 않습니다.
이번엔 좀 불행한 상상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양쪽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되는 사고를 당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의의 사고는 우리 삶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 이 둘의 행복감을 비교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발상입니다. 로또 당첨자가 불행해질 수는 있겠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만큼 불행할 리는 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느 정도 행복하고 불행할까요? 그리고 그 행복과 불행한 감정은 얼마나 지속될까요? 어떤 사건이 우리에게 발생한다면 그 사건은 우리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 해당 사건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예측한다면 그 사건이 발생하도록 하거나 발생하지 않도록 회피하는 노력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 터무니없이 빗나간다면 어떨까요? 내 집 마련을 하면 일생일대의 행복감을 느낄 것으로 예측해서 긴 세월을 참고 아끼고 고통스러웠는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예상보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심리학이 밝혀낸 사실은 우리가 어떤 사건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할 때 정확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측이 번번히 빗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외부 사건이 미치는 영향을 과대 평가한다
먼저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래 고민하지 말고 표시해 보세요
현재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다음 중 가장 적합한 숫자를 선택해 보세요.
이번에는 다음 상황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친구 중에서 작년에 로또에 당첨되어 10억원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친구는 과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또 다른 친구인데,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1년간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할까요?
답을 표시했다면, 실제 현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캠퍼스 심리학과 자노프-불만(Janoff-Bulman)교수 등은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인 그룹, 로또에 당첨된 그룹,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그룹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무작위로 선정한 일반인의 행복 지수는 5점 만점에 3.8점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첫번째 질문에 4점 정도로 답하셨다면, 이 연구에 참여한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행복감은 얼마였을까요? 예상과 달리 평균 4.0점에 그쳤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과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들 간의 행복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행복도는 평균 3.0점이었습니다.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첫번째 질문에 3점을 주신 분들이 많았을테니까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과 일반인의 행복지수의 차이가 1점도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일반인들보다 행복하다고 응답한 장애인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미래의 행복에 대한 예측이었습니다. 미래의 행복지수를 측정하니, 일반인들은 4.1, 로또 당첨자들은 4.2,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4.3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오히려 장애인들이 미래에는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우리의 예상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은 우리의 예상만큼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외부 사건이 우리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적응력이란 자동온도조절장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우리가 감정 예측에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의 적응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적응력이란 우리 마음의 자동온도조절장치입니다. 사람마다 설정된 온도가 있는데 외부 환경이 변할 때, 잠깐은 변할 수 있지만 다시 설정된 온도로 복귀하게 됩니다.
또, 적응력의 속도도 우리 예상보다 빠릅니다. 급여가 오르거나, 좋은 차로 바꾸면 오래오래 행복할 것 같지만 다시 원래 행복 수준으로 빠르게 돌아갑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 영원히 아픔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통도 줄어들고 생각도 바뀝니다. 새로운 연인이 나타나면, ‘그 때 헤어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심지어 ‘헤어지길 잘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저 역시 대학입학시험에서 신체검사 때문에 낙방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회정의를 지키는 경찰이 꿈이었습니다. 다른 진로는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고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낙방한 다음에 어쩌다 산업심리학과로 진학했지만, 지금은 심리학을 매일 공부하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때 경찰이 됐으면 어쩔 뻔 했어’라고 매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도전하지 말고 안주하며 살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심리학이 말하는 적응력은 우리가 스스로의 적응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실패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알래스카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반면, 하와이는 일년 내내 따뜻하고 맛있는 과일과 시원한 해변도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요?
알래스카 사람들은 하와이로 이사를 가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하와이 사람들이 알래스카 사람들에 비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 지수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외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내부에 설정된 행복 수준으로 다시 복귀하기 때문입니다.
환경 적응은 빠르지만 경험 적응은 느리다.
물질적인 환경에 대한 적응은 우리의 예상보다 매우 빠릅니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적응은 느립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해 식탁, TV, 인테리어 등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가족과 여행지에서 경험을 통한 행복은 우리 내면의 느린 적응력 덕에 오래 유지됩니다. 제가 참 많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신해철은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곡에서 행복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이 가사를 심리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가사의 대부분은 환경 적응이기 때문에 여기에 행복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가족 안에서의 안정은 경험 적응이기 때문에 행복이 있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조직에선 새로운 비전과 변화를 준비합니다.
이때 리더와 구성원들은 변화가 야기하는 행복감이나 두려움에 집중하기보다는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에 가치를 두는 편이 더 현명합니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압박감을 상상하며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적응이 예측보다 빠를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는 편이 좋습니다. 심리학은 이런 시기에 경험을 통한 행복에 집중할 것을 권합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변화했음에도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습니다. 앞으로 있을 또다른 변화에도 우리는 분명 우리의 예상보다 적응이 빠를 것입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새로운 일을 통한 학습과 성장, 새로운 동료들과 협업과 같은 경험을 통해 우리의 만족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