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여행자 Feb 21. 2024

남자 승객의 숨겨진 의도

부모의 마음

우리 엄마는 승무원인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엄마를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민망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었다.

 오프날 본가에 갔을 때 일이다.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은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때 정적을 깨는 엄마의 말 한마디.


 "내일은 비행 어디로 간다고 했지?"

 "으응??.. 일본 퀵턴..ㅎ"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분명 엄마에게 비행 스케줄을 몇 번 얘기해 주었는데도 엄마는 사람들이 타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한번 물어본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냥 좀 민망하다(요즘 아기 엄마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치맘'이 딱 우리 엄마다). 지금은 나의 직업에 대해 무한 애정을 쏟는 엄마이지만 한때는 승무원이라는 나의 꿈을 반대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엄마에게 승무원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엄마와의 팽팽한 신경전이 몇 개월 이어졌지만 나의 끈질긴 설득으로 엄마는 내 꿈을 받아들이셨다.

 부모에게 꿈을 인정받지 못했던 나의 학창 시절.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지난날이 어느 날 한 승객을 만나면서 슬그머니 다시 소환되었다.



  국내선 비행을 하던 날이었다.

 비행기 맨 뒷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서비스를 하고 있는 승무원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 승객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의 고개도 같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어떤 의도가 담긴 시선인지 알 수가 없으니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 쓰읍..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갤리로 돌아가 동료 승무원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녀도 그 승객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꼈다고 했다.

 그때 남자 승객은 서비스가 다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쓱 일어나 갤리로 향한다. 그리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닫아두었던 갤리 커튼을 조심스럽게 연다.


 '앗, 그 승객이다..'

 점프싯에 앉아있다가 승객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손님,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약간은 방어적인 태도로 승객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물 한 잔 좀 주세요."


 생각보다 별거 아닌 요청에 괜한 오해를 했나 싶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종이컵에 평소보다 물을 그득 담아 드렸다.

 하지만 그는 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했다. 반도 마시지 않은 종이컵을 들고 갤리에서 쭈뼛쭈뼛 서있다가 곧이어 본색을 나타냈다.



 "국내선 비행하면 하루에 몇 번 왔다 갔다 해요?"

 "그럼 지금 이게 몇 번째 비행 중인 거예요?"


 비행 강도는 어떤지, 진상 승객은 많은지, 힘들지는 않은지 등 그의 일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보통 이런 질문은 승무원 준비생이 비행기에 탔을 때 종종 물어보는 내용인데, 중년의 남성이 이런 질문을 하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단순히 '우리 직업에 관심이 많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가 우리를 인터뷰한 의도에 대해 사실대로 고백했다.

 알고 보니 딸아이가 승무원을 하고 싶어 하는데 본인은 딸이 승무원 하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반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일이 고되고 고생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딸의 꿈을 반대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비행기에 타서 승무원들을 보니 딸 생각이 났나 보다.


"승무원 일 많이 힘들죠? 내가 못하게 반대하는데 자꾸 하고 싶다고 하네.."



 이 말을 들으니 학창 시절 내 꿈을 반대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그 승객과 같은 마음으로 반대했으니까 말이다.

 부모인 그 승객과 딸아이의 마음 둘 다 잘 알기에 누구의 편을 들어주며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저희 어머니도 승무원 꿈을 반대하셨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제일 좋아하세요. 부모님이 반대해도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손님, 비행이 조금 힘들긴 한데요! 제가 해보니까 그래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딸아이의 마음을 대신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마워요."


 그는 담백한 인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는 과연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딸아이의 꿈을 계속해서 반대하기 위해 비행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부디 딸아이의 꿈을 응원할 수 있도록 힘들지 않다고 대답해 주길 바랐던 건지 말이다.

 이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길 바라겠는가.

 그 승객은 무작정 딸의 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고생할까 봐, 힘이 들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반대하는 마음만큼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로 돌아간 승객은 창밖 구름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우리 엄마 생각이 난다.



PS. 이 비행이 끝나고 그 승객은 딸의 꿈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을지, 그리고 딸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궁금하네요. 과연 지금쯤 그 꿈을 이루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은 다 안개 때문에 ep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