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나부터 의심했다
광고 일을 하면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다.
아이디어가 광고주에게 거절되거나,
팀과의 의견이 어긋나 프로젝트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면 어김없이 같은 감정이 따라왔다.
좌절. 그리고 자책.
“내가 부족해서 이런 걸까?”
이 질문은 회의실을 나선 순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휴대폰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고,
회의 중에 했던 말들과 표정들이 자꾸만 되감기처럼 떠올랐다.
잠들기 전까지 그 장면을 반복해서 곱씹다 보면, 결국 결론은 늘 같았다.
역시 내 문제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실패 앞에서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상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보다는, 모든 원인을 나 자신에게로 빠르게 모아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게 가장 익숙했고,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 프로젝트에서 그 감정은 더 선명해졌다.
밤을 새워 준비한 아이디어였고, 나름대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몇 마디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광고주가 원하는 메시지, 타이밍,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이걸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내 판단 자체를 의심하게 됐다.
그때까지 나는 실패의 원인을 항상 하나로만 좁혀 생각하고 있었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하지만 회의가 끝난 뒤,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아이디어 자체가 틀렸던 게 아니라, 이 아이디어가 놓인 환경과의 연결 방식이 어긋나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어떤 타이밍에 전달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 생각은 확신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러운 의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실패의 이유가 반드시 ‘나’ 하나로만 설명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비슷한 실패는 또 있었다.
팀원과의 의견 충돌로 중요한 피드백을 놓쳤고, 그 결과 프로젝트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각자의 입장을 방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 과정에서 쌓인 감정은 일 자체보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뒤늦게 서로의 관점을 차분히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작은 오해 하나가 얼마나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소통의 부재가 실패를 얼마나 빠르게 키우는지 말이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실패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실패는 아프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질문이 마음속에 남기 시작했다.
정말 모든 실패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실패를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던 걸까.
그때의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음 편(하)**에서는
실패를 바라보는 나의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다시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