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야기 7
엄마의 잠든 얼굴을 잠시 들여다본다. 방사선 치료가 힘들었을까? 아니면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싫어 조용히 엄마를 불러봤다.
“엄마!”
깨워주고 싶은데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다. 엄마를 살짝 흔들어 깨워봤다. 화들짝 놀라며 깨는 엄마. 동시에
“깜짝이야!”
엄마는 꿈에서 외할머니를 보았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뭐라고 했냐니까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다. 복잡한 표정의 엄마를 뒤로 한 채 주방으로 가서 차를 끓였다. 차를 잘 안 마시고 “커피 한 잔만 타 줘” 하는 엄마가 나는 못마땅했다. 이렇게 아프고 고생을 하면 안 좋은 습관을 버렸으면 좋겠는데 쉽게 안 되는지 언제나 “한 잔은 괜찮대” 하신다. 노니차를 끓이고 먹기 좋은 온도로 식힌 후 예쁜 찻잔에 따라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 노니차 마셔요.” 차를 마시다가 엄마가 꿈이 다 생각은 안 나는데 외할머니가 울었다고 했다.
“아무 말 없이 우셨어?”
“응. 한참을 우시더라.”
엄마는 눈물이 나려는지 말끝을 흐렸다. 나는 살며시 엄마 손을 잡고 다독다독 해줬다. 엄마가 어떤 세월을 살았는지 다 아니까. 속상한 일 있어도 말 못 하는 막내딸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또 고생시킨 사위가 얼마나 미웠을까? 살아있을 때도 엄마에게 온갖 투정과 거짓말만 했던 삼촌은 결혼도 못하고 67세의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남은 건 빚뿐이었다. 우유부단하고 허풍이 많은 삼촌은 자주 엄마에게 돈을 빌려갔다. 결국 엄마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삼 촌 사업자금으로 빌려주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형수! 내가 두 배로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삼촌은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았다. 그래서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부터 대학교 졸업식 때까지 꽃다발을 들고 와서 축하해주었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대학 때 전주에서 자취하던 나는 돈 아낀다고 졸업여행도 안 가고 친구랑 자취방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삼촌이 찾아와서 십만 원을 주고 갔다. 나는 그때 삼촌이 고맙고 용돈이 생기니 갑자기 부자가 된 것 마냥 좋았다. 돈이 항상 부족했던 나는 숨통이 트였다. 이상하게도 삼촌은 내가 돈이 떨어져서 고민일 때 항상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아빠하고 사이가 안 좋았다. 자주 화를 내는 아빠보다 다정한 삼촌이 좋았다. 늘 나에게 따뜻했고 말을 안 해도 나무란 적도 없고 그냥 이뻐했다. 삼촌이 나이 들어 힘도 없고 불쌍해지면 내가 용돈도 드리고 살뜰히 살펴드려야겠다고 어린 마음에 다짐했다. 결혼할 때 나는 삼촌이 지은 죄를 알아 버렸다. 전부를 알게 된 건 한참 뒤지만 그때 이미 삼촌에 대한 원망이 생겨 마음에 금이 갔다. 일하고 돈도 제대로 못 받던 삼촌은 엉터리 사업가였다. 무엇보다 제일 문제는 삼촌은 신용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삼촌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점을 비난했으며 누군가는 그런 점을 이용해서 돈을 떼먹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엄마에게 한 번만 믿고 도와달라는 말을 자주 했고 마음 약한 엄마는 삼촌을 도와주다가 늘 그렇게 당했다. 그런 삼촌을 아빠는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했고 삼촌은 아빠를 피해 다녔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형제가 많은 아빠는 4남 2녀 중 장남이었다. 공부도 안 하고 성격도 제일 우유부단하고 일 처리도 엉망인 삼촌이 집안의 망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삼촌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의 삶은 지금 달라져 있을까?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망쳐버린 삼촌을 원망했다. 삼촌이 욕심을 버리고 남 밑에 들어가 착실히 일 했다면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삼촌은 몇 년 전 본인이 진 빚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선택했다. 억울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참고만 살았던 엄마가 병에 걸리고 십 년 동안 투병하는 힘든 과정을 다 봤기에 삼촌의 죽음 앞에 나는 담담했다. 놀라기는 했지만 눈물이 나 오지 않았다. 엄마가 병마와 싸우며 시름시름 앓으며 힘들어할 때도 삼촌이 돈 때문에 찾아왔다고 한다.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던 삼촌이 얼마나 끔찍하고 미웠을까? 엄마는 화가 치밀어올라 통장을 갖고 오라고 하면서 삼촌한테 던지며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다고 했다. 병원 다니면서 쓸 돈밖에 없다고 소리치자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나 모르게 친정에 다녀갔고 부모님이 말을 안 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삼촌이 떠나고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다.
엄마가 투병을 하면서 듣게 된 그 질긴 악연 때문에 나는 삼촌을 증오하게 되었다. 삼촌이 떠난 지 3년이 넘었다. 작년까지는 가끔 법원에서 이상한 우편물이 날아왔다. 나는 그때마다 작은 아빠한테 서류를 팩스로 보내주었다. 다 삼촌이 남긴 빚 때문에 오는 우편물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축복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삼촌의 죽음을 겪으면서 절실하게 들었다. 엄마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빠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삼촌과의 인연이 악연으로 변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었던 것이다. 잘못된 걸 알면서 도독하게 끊어 내지 못해서 스스로 병을 자초한 셈이다. 엄마가 얼마나 억울할지 짐작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난다.
‘엄마, 그렇게 힘든 세월을 참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혼자서 많이 울었겠다. 몰라서 미안해. 앞으로는 참지 말고 말해 줘. 많이 웃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지만 울고 싶을 때 실컷 우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다잖아. 부디 엄마의 행복한 시절이 아직 다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할게.’
오늘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엄마와 나는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