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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앎 Oct 05. 2020

정장을 입으면 프로가 되나요?

앞으로, 낫프로








 인턴이었을 때는 무난하게 옷을 입었어요. 이미 벌어둔 돈은 다 까먹고, 새 옷을 사기에는 수입이 적어서 적당히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야말로 적당히라 별 특징 없는 옷들이었어요. 그 옷을 고르는데도 스트레스를 어찌나 받았던지.


 이렇게 저렇게 입으며 하루하루 버텼는데 어느 날 상무님이 한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 미팅도 다녀야 하니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게 입으면 좋겠다고. 그때는 그냥 네! 했는데 저 진짜 당황했어요. 아니 프로의 옷이 뭐지? 적당히 정장을 입으면 되는 건가?  회사 스타일이 그건 아닌데, 그리고 내일 미팅을 간다고? 상무님의 한 마디가 폭풍이 되어서 그날 일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


 적당한 가격대도, 어느 브랜드에 가서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일이 미팅인데 퇴근을 늦게 해서 옷 살 시간이 없어 허둥지둥했었어요. 광화문에 있는 오피스룩 전문 매장이 늦게까지 문을 열어서 거기를 무작정 들어갔어요. 마감시간이 넘도록 결정을 못해서 직원분들 분위기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퇴근시간 못 지켜 드려서 뎨송합니다.) 어찌어찌 옷을 샀죠. 미팅 첫 날도 기억나요. 안 신던 하이힐, 흰색 블라우스에 청록색 바탕에 백합 무늬가 있었던 스커트를 입고 중구에 있는 어떤 회사 본사로 가서 미팅을 했죠. 명함을 드릴 때 프로페셔널하게 보이고 싶어서 두근두근 했어요. 


 첫 미팅은 무사히 넘겼는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일주일치 옷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없고, 대충 사기는 싫고 프로의 모습은 보여야 하고… 그 달 월급날 프로의 옷을 왕창 샀어요. 쪼꼬미 소비만 했던 터라 그렇게 많은 돈을 옷 사는데 쓰다니 카드를 내밀 때 속으로 달달 떨었어요. 원래 쇼핑은 긁는 맛 그리고 기분을 엄청 업시켜주잖아요? 그런데 프로의 옷을 살 때는 스트레스뿐이었어요. 그래, 예쁜데 이게 내 옷인가 싶고, 이렇게 입는다고 프로 인가 싶고.


 회사 사람들이 스타일이 바뀐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는데 좋지도 않았어요. 틀에 맞춰 입었을 뿐.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데 제 아이덴티티는 점점 없어지고 있었죠. 정장을 입으면 프로가 되나요? 아니요. 절대 안 돼요. 프로는 옷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인드 세팅에 도움이 되긴 하는데 인스톨하는 방법은 내가 알아내야 하더라고요.


 그때 샀던 프로의 옷 중에 지금까지 입는 건 체크 재킷 하나뿐이에요. 1년 차 때 그 옷들을 많이 돌려 입기도 했고, 이제는 프로의 옷이 꼭 프로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또 내가 풍기고 싶은 프로의 느낌이 무엇인지 알았거든요. 저는 프로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믿고 맡기고 해내는 데 첫 이미지는 중요할 수 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잖아요. 프로인지 아닌지. 그렇다고 옷은 쓸데없는 껍데기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적당한 룩앤필과 톤 앤 매너! 필요해요. 지켜야 하는 사회적인 선은 있잖아요. 대신 나를 너무 죽이지는 말자는 거예요.


 매니저가 될락 말락 할 때, 매니저가 됐을 때는 오히려 사원 때보다 프로의 옷은 많이 없어졌답니다. 이제는 프로와 나 사이의 합의점에서 옷을 입고(블랙 재킷 만세! 원피스 만세!), 메인 스타일 하나에 베리에이션 여러 가지로 입고 다니고 있어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 프로와 한아름이 잘 만나는 선에서요. 프로이고 싶은 한아름도 저이고, 주말 한아름도 저인데 프로가 뭔지 체감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아요. 한 3년 정도 지났을 때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나 할까.


 프로의 길은 멀고 험해서 매니저밖에 못해본 제가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저는 제 아이덴티티는 지키면서 프로이고 싶어요. 프로의 스테이지에서 남들과 다른 이삼사를 만들고 싶고, 그 모습이 정형화된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전보다 외형은 적당히 일은 열심히 무드로, 앞으로 낫프로를 지향하지만 한아름 아이덴티티를 제일 잘 아는 프로 한아름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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