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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pr 16. 2024

백발백중의 연애



친한 친구가 있다. 삼황 중 일인이다. 삼황은 주변인 중 사업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세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의 공통점은 배포, 강단, 행동력이다. 남에게 베풀 때 아까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돈으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울 거라 판단하면 먼저 나선다. 할 말이 생기면 말한다. 하지 않고 걱정하기보다 일단 저지르고 걱정한다. 그 결과 사업으로 동년배들이 쉽게 갖기 어려운 수익을 거둔다. 공통점 말고 저마다의 강점도 있다. 지금 말할 친구는 설득의 달인이다. 평소엔 평화주의자이지만, 때에 따라 투사로 거듭난다. 원하는 것을 기필코 이뤄낸다. 논쟁을 즐긴다. 말로 사람 구워삶는다.



주말밤 설득의 달인과 술잔을 주고 받았다. 새벽까지 얘기를 나눴다. 모르는 친구의 일면을 봤다. 백발백중 명사수 래퍼 정상수처럼, 그는 이성 관계에서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다. 백만 유튜버부터 배우 겸 쇼호스트까지. 그의 화려한 연애 생활을 들으며 감탄했다. 그는 분명한 연애 프로세스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찍은 사람과 100프로 확률로 만났다. 그는 술을 마시면 종종 전에 만났던 사람, 혹은 최근 연락하고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다. 하나같이 미인이다. 그는 강단과 인간적 매력이 있다. 인간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는다. 친구로서 그의 연애 페르소나를 볼 길이 없다. 그의 입을 통해 연애 페르소나를 관찰했다.



그의 백발백중 연애 프로세스는 이렇다. 오가다 괜찮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묻지 않는다. 나중에 공통의 친구를 수소문해 연락처를 받는다. 핸드폰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튼다.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함께 커피나 맥주를 마시자- 그가 말한 핵심 1은 '양자택일'에 있다. 만난다 vs 안 만난다가 아니라 커피 vs 맥주다. A든 B든 만남으로 이어진다. 상대의 반응은 '그래 보자'와 '나중에 시간 되면 봐요'로 나뉜다. 후자는 완곡한 거절이다. 그의 핵심 2는 '집요함'이다. 여기가 밀어붙이는 타이밍이라며 집요하게 언제 어디서를 조율한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을 성사시킨다. 분위기 좋은 식당을 예약한다. 그의 핵심 3은 '뭐가 됐든 웃게 만들기'다. 자기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없다. 최대한 많이 웃게 만들면 된다. 함께 있을 때 즐거운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주면 절반은 성공이다. 그의 핵심 4는 '모닝턴 온천'이다. 멜번의 관광 명소인 '모닝턴 온천'을 대화 주제로 꺼낸다. 노천탕에서 보는 절경과 온천수에 몸을 담궜을 때의 황홀함을 설명한다. 상대 머릿속에 모닝턴을 '몹시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든다. 넌지시 나중에 시간 되면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후에 핸드폰 메시지를 통해 모닝턴 온천에 가는 스케줄을 잡는다. 왜 모닝턴인가? 거리가 멀다. 가는 길이 아름답다.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친구 사이에 갈 수 없는 곳이다. 장소가 상대에게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일단 가기로 결정했다면 끝이다. 해안가를 따라 왕복 3시간을 드라이브한다. 멜번의 절경과 바닷바람,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단 둘이 대화를 나눈다. 상대에게 넌지시 말한다.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냥 만나자" 대답은 항상 Yes다. 이상 친구의 연애 프로세스.



과연! 감탄하며 듣는다. 그의 프로세스엔 다양한 심리 기술이 숨겨져 있다. 적당한 적극성과 유머 감각, 준비성, 환경의 도움이 합쳐져 만남이 성사된다. 그는 달변가다. 말로 사람 구워삶기 달인이다. 그는 말로 돈을 번다. 호주 에너지 회사 세일즈 파트 팀장이고, 부업도 세일즈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해서 강단이 있다. 나설 때 멈출 때를 안다. 돈 만져 본 사람이라 돈도 잘 쓴다. 특유의 여유가 있다. 안다고 다 할 수 없다. 그의 전략은 그라서 통한다. -상대를 웃게 만들어준다-는 핵심이 특히 그렇다. 누가 안 하나. 못 해서 문제지. "되게 쉬워. 그냥 뭐가 됐든 많이 웃게 만들면 돼." 편하고 재밌는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주지 못 하면, 온천 여행은 성립할 수 없다. 요컨대 본인 맞춤 전략을 짰다. 전략에 적합한 능력이 뒷받침됐다. 백발백중의 비결이다.



그는 연애학 강좌는 잘못된 제자를 만났다. 유일한 청자는 유부남이다. 알아도 써먹을 곳 없다. '미혼일 때 이 사실을 알았으면!'이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본인 맞춤 전략이다. 알아도 못 써먹는다. 그처럼 좋은 독일차도 없고, 누구나 웃길 능력도 없다. 그의 가르침은 유용하지 않다. 하지만 재밌다. 모르는 친구의 일면을 본다. 화려한 연애사의 시작을 언어로 재구성한다. 배울 건 없지만 전문 방청객 뺨치는 리액션으로 호응한다.



정해진 루트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지점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의 특별한 순간이 실은 너와 X들의 모든 순간이다. 친구를 거쳐간 이들은 실망할 지 모른다. 물론 친구가 그녀들에게 사실을 알려줬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길 바란다. 데일 카네기는 말했다. 모든 인간은 특별하길 '갈망한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인삿말은 'One in a million!'이다. 백만 명 중 하나란 뜻으로 청자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가고 싶은 희망을 담았다. '백 중 백!' 안녕하세요 제가 그 백 명입니다. 남한테 통하는 전략이 저에게도 통했네요. 저도 별수 없는 인간입니다. 뭐 인간이 다 똑같지 않습니까-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연애 대상에게 만큼은 특별한, 원앤온리로서 존재하고 싶다.



정해진 연애 루트는 본인에게도 독 아닐까? 결핍은 만족의 토대다. 어렵게 성취하면 소중하다. 그에겐 결핍이 없다. 합격률 100%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통한다. 누구든 원하면 만날 수 있다. 쉽게 성취한 연애는 시시하다. 그 때문인지, 그는 연애에 달관한 사람처럼 보인다. 지금도 여러 이성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태도가 미지근하다. 여기저기 낚싯대를 던져놓고 물면 어떤 기회를 타진한다. 연애에 쏟는 에너지가 한정적이다. 연애에 있어 기필코! 보다 에너지 대비 효율 높은 사람과 만나야지~다. 느낌표와 물결 표시의 차이랄까. 저마다 다른 전략을 썼다면 다양한 맥락의 만남이 가능하다. 변별력 없는 만남의 컨텍스트에서 특별함 찾기 어렵다. 그 결과 이 사람일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부럽다. 백발백중의 연애. 원하는 것을 전부 가질 수 있는 능력은 비극이다. 하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놓치는 것도 비극이다. 어차피 비극이라면 풍요의 비극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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