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과 부조리 인간

by 띤떵훈


최근 멜번 리딩홀 발제 도서인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다. 분량이 28만 자를 훌쩍 넘는다. 요즘 유행하는 책들이 대개 12만 자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두 권 이상의 무게감이다.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그 주변 인물들이 극을 이끈다. 후반부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들은 평생을 집 안에서 보낸다. 집 근처 농지를 산책하는 정도가 활동의 전부다.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지 않고, 아주 작은 반경 안에 갇혀 산다. 임마누엘 칸트가 떠올랐다. 세상에 대한 거대한 철학을 썼으면서도 평생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던 사람. 그의 사유는 우주만큼 방대했으나, 육신이 머문 세계는 고작 몇 걸음 범위였다.





이들의 좁은 생활권은 현대인이 믿는 '성장 신화'를 돌아보게 한다. 동네를 벗어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끊임없이 경험을 넓혀야 한다는 믿음은 사실 근대 이후의 발명품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 인간은 마차나 두 발로 하루 안에 돌아올 수 있는 도보 생활권에 평생을 의지했다. 그 이전의 삶에는 우리를 묶는 제약이 무수히 많았다.





물리적 범위가 좁았던 것만큼 교육 또한 현대의 산물이다. 글을 읽고 학문을 깨우치는 일은 과거 대부분의 사람에게 불필요한 사치였다. 국가 생산의 중심인 농업을 유지하려면 지독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학문과 철학이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 그 필수적인 생산을 위해 수많은 이가 배움 대신 노동에 투신했다.





그렇다면 과거인들에게 남은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그 좁은 세상에서 죽기 살기로 경탄의 대상을 찾는 일뿐이었을 것이다. 현대인은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소식을 실시간으로 본다. 자극을 원하면 곧장 손에 쥘 수 있는 시대다.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무료함이 기본값이었고, 그 안에서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천국과 그들의 천국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소설 속 린턴은 꽃밭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별을 보는 조용한 계절을 천국이라 말하고, 캐시는 자연을 뛰어놀며 노래하는 생동감을 천국이라 말한다. 린턴에게 캐시의 천국은 너무 자극적이었겠지만, 현대인의 눈엔 그조차 '자극 디톡스'나 다름없다. 그저 자연 안에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사고 특별한 서비스를 구매하는 천국은 철저히 현대가 만들어낸 것이다.





처음엔 그들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부모의 부동산을 상속받아 지대와 하인에 기대어 살며, 운동도 없이 병약하게 살다 스무 해 정도면 떠나는 삶. '더 나은 나'를 향한 욕구도, 사회적 가치 창출도 없는 그들의 생은 지독하게 무료해 보였다.





그러다 내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현대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더 멀리 나가고 강한 자극을 쫓을 뿐 근간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드는 가치는 대체 가능하며, 스타를 선망하는 세상이 덧씌운 환상을 따라갈 뿐이다. 미래인의 눈에 우리는 그저 좁은 시대에 갇혀 찰나를 살다 떠나는 방문자로 보일 것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돈, 성공, 명품 시계가 과연 고유한 삶의 의미일까. 죽고 나면 내 것이 아니며, 심지어 그 욕망조차 시대가 주입한 기본값이다. 타인의 욕망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게 효율적이니 그렇게 학습되었을 뿐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각자의 욕망거리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최근 읽은 《시지프 신화》는 삶의 무의미를 알면서도 현재에 투신하는 '반항'을 말한다. 인간은 본래 부조리한 존재다. 신이나 우상에게 의미를 위탁하지 않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이 허무를 이기는 길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이내 숏폼 영상과 자극의 홍수에 몸을 던진다. 정신은 지금 여기가 아닌 화면 속으로 쏠리고 일상은 다시 시시해진다.





이때 《폭풍의 언덕》 속 인물들이 다시 보였다. 특히 히스클리프의 집착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음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세상이 강요하는 도덕이나 미래의 보상을 거부하고, 오직 현재의 타오르는 감정이라는 사명에 자신을 던졌다.





이것이야말로 더 인간다운, '자각된 반항을 실천하는 부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미래의 성취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며 '버티는 삶'을 산다. 그러나 그 좁은 언덕의 주인공들은 무의미한 세계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며 순간에 완전히 몰입했다.





무의미하다고 내려다보던 그들의 삶이, 어쩌면 나보다 훨씬 충실했다. 의미는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파멸시킬지언정 끝내 놓지 않는 지독한 몰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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