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보드 워리어다. 키보드를 무기 삼아 인터넷 바다를 누비며 다른 유저를 향해 자판을 두드린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그들을 저격한다. 인신모독, 욕설, 무논리적인 비난을 하진 않는다. 조금 더 정중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논쟁을 즐기는 것은 동일하다.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들이밀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 중 하나이다. 실생활에서는 남과의 언쟁이나 마찰을 꺼리는 성향이 있어, 낌새가 이상할 때는 침묵하거나 자리를 피한다. 설령 내가 옳다고 해도, 그 말을 들은 상대의 기분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키보도를 연마하며, 기본적으로 세운 철칙이 있다.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할 능력이 안 될 때나, 수준 미달의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다. 시간 낭비이고, 상대방은 점잖은 말투의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댓글을 주고받으면 남는 것은 허무뿐이다. 피드백을 주는 경우는, 상대의 글에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하고, 상대와 내가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이다. 가볍게 훑어봤을 뿐인데 거슬리는 점이 우수수 나오는 경우도 있고, 다 읽고도 특별한 오류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누구의 글이건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면 문제점, 혹은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이 글 좀 쓴다는 고수일 경우, 상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물론 내가 무너지는 경우, 상대가 대꾸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글을 쓸 때, 논리를 찾듯이, 비평을 할 때는 명분을 찾는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데, 명분이 생겨야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다. 명분 첫 번째, 상대방의 글쓰기를 위한 것이다. 두 번째, 나의 글쓰기를 위한 것이다. 세 번째, 이 글을 읽는 다른 독자를 위한 것이다. 네 번째, 더 많은 독자를 만들 수 있다. 하루 중에 글을 읽는 시간이 긴데, 읽다 보면, 거슬리는 부분이 꼭 생긴다. 상대방이 나름 작가 행세하는 인물이라면, 내가 댓글을 남김으로 자존심에 타격을 입는다. 그냥 넘길까 하다가도 손의 간질거림을 못 참고 명분을 찾는다. 아닌 것은 아니다. 그가 맞다면 나에게도 유익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형식상 '건전한', 실상 '자기만족'을 위한 비평을 한다. 다만 상대방이 쓴 글의 장점을 먼저 언급하고, 그 사이에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넣고 칭찬으로 마무리한다. 키보드 워리어지만, 나의 의견을 100% 전달하며 상대방의 기분이 언짢아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모든 프로세스를 끝마치고 글을 작성한다. 그러면 상대방의 반응이 궁금해 자다가도 눈이 떠진다. 특히 자기 글에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들이나, 신경을 많이 쓰는 인물들의 반응은 빠르고 재밌다. 반응은 몇 가지 양상을 띤다. 1. 나의 비평에 100% 수긍하며, 지금까지 나태해진 글쓰기를 뒤돌아 본다고 하는 사람. 2. 비평에 부정하는 대신 하소연을 하는 사람. 3. 비평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 4. 무시하는 사람. 우선 123과 4가 반반으로 나뉜다. 남은 50%에선 1,2가 20% 씩을 차지하고, 3이 10%의 비중이다. 가장 재밌는 반응은 물론 3번이다. 1,2 번은 거기서 끝이라면, 3번은 속편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종교인들, 나름 전문 작가들이 3의 부류에 속한다. 글쓰기가 좋은 점은 생각하고 자료를 조사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상대의 반박에 제대로 반박하기 위해 준비를 할 수 있다. 이런 자료 조사를 통해 배우는 계기가 되고, 여기서 파생되는 재미를 얻는다.
키보드 워리어 활동을 전에는 파운틴에서 했는데, 요새는 브런치로 이적했다. 파운틴은 상호 비평을 적극 권장하는 훌륭한 시스템이라, 오히려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다만, 매일 보는 회원들의 글이기 때문에 흥미가 덜 생기고, 미안함과 부담감에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브런치는 매일 새로운 작가를 볼 수 있고, 새로운 글을 볼 수 있다. 키보드 워리어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실례를 본다.
예)
글 잘 읽었습니다. 분석이 돋보이는 좋은 글입니다. 아쉬운 점은 조사한 자료의 사실 여부입니다.
1. 알타이어족은 한국 일본 몽골뿐만이 아닙니다. 언급하신 것보다 훨씬 많은 언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해 있습니다.
2. 중고등학교 문학 지문의 99%가 1800년도 이전에 나온 작품이다.라고 언급하신 부분이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제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그렇진 않았거든요. 문제는 그게 불과 10~15년 전이라는 점입니다. 나오는 소설이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3. 문장력을 중시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하셨는데, 문장력이란 말의 해석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수려한 비유와 묘사'를 문장력으로 판단하셨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문장력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하는가라고 해석하는 저에겐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문장력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예 2)
글 잘 봤습니다.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서문. 지인의 결혼 본론 1 책 장점(제목) 본 2 책 장점 2(내용) 본 3 책 장점 3 (형식) 결론 책 장점 4(표지)
저는 에세이를 읽을 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지, 논리가 충분한지 중점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1. 결혼을 안 해봐서 덕담은 못 한다. 그러나 신혼여행지 추천은 할 수 있다. 여기서 왜?라는 의문이 나오는데, 그에 맞는 논거가 적절히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본문 문단에 그 이유가 나오긴 하는데, 그렇다면 나중에 그 이유를 말해줄게라고 언급을 해줘야 매끄러운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2. 보통 한국어로 된 고전음악 책은 읽으나 마나일 정도로 쉽거나 한국어 출판에 의의를 둔 것처럼 어렵다 라는 문장에 어떤 부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언급이 누락됐습니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 혹은 거짓으로 보입니다.
3.-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석양의 강물처럼 반짝거리며 흘러갈 때만 떠오르는 기쁨도 있다. - 어떤 기쁨을 비유한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글의 목적이 독자로 하여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라면, 납득할만한 요소가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위 댓글의 경우는 사실 여부에 대해 지적한 것이기에 특별히 반박할 거리가 없다고 여겼고, 두 번째는 논쟁할 각오로 쓴 것이다. 그러나 항상 의외가 존재하는데, 오히려 위 댓글의 3번 문장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아래 댓글의 경우 상대가 수긍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런 예외성도 즐거움 중 하나이다. 전에 배려가 부족한 댓글을 써서 한 작가의 글을 완전히 내려버린 적이 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예의나, 상대방의 기분이 덜 상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크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
가끔은 누군가 나의 글을 신랄하게 비평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즐겁게 논쟁을 하고, 납득하는 내용이라면 배움의 계기로 삼고 더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종격투기를 봐도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재밌다. 글도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누군가와 의견을 나눌 때 재밌다. 제대로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 하고, 무자비한 주먹세례를 받을 필요도 있다. 그러면 좀 더 글이 날카로워질 텐데. 앞으로의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활동을 응원하며 조금 더 키보드를 갈고닦아야겠다. 더 강한 장수들을 베고, 더 큰 규모의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