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전, 같이 사는 친구가 분노에 찬 말투로 한 사건을 화제에 올렸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히 채운 추모 쪽지들이 지목하는 그 사건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와, 언론의 식을 줄 모르는 보도는 대중이 사건에 얼마나 주목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5월 17일 새벽, 30대 남성 김 모씨가 안면이 없던 20대 여성, 하 모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사건 발생 9시간 후인 10시경, 경찰은 피의자를 검거했다. 범인은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언론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라 칭한다.
이번 평론은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몇 가지 도구를 이용해 사건과 그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 배경을 분석할 예정이다. 이는 김 모씨의 숨은 동조자를 알아보려는 노력이 될 것이다. 언론과, 남초, 여초 커뮤니티에서 눈에 불을 켜고 증명하려는 여성 혐오 여부를 포함, 대중이 모르고 지나쳤던 다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번에 쓰일 분석 툴은 여성 혐오, 다수가 이용하는 사회 시설, 시민성, 탈산업화 등이다. 유기적 분석을 통해 배후를 뚜렷이 보기로 한다.
가장 큰 쟁점인, 여성 혐오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결론 먼저 말하면, 이 사건은 여성 혐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경찰 측은 피의자의 정신 이상을 근거로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여성 혐오란 단어에 대한 일차원적 해석으로, 오판이다. 여성 혐오는 간단히 설명하면, 혐오감과 공격성을 의미한다.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은, 혐오, 혹은 증오가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조건인 공격성의 발원이 무엇인가?. 이 단순한 물음의 부재로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 한 것이다. 짧은 사유를 거쳐 그것은 성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대상화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여성 혐오로 귀결되는 사건인지 서술한다. 범인은 주변의 여성들에게 수치와 분노를 느꼈다고 언급했고, 그 분노를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드러냈다. 살의는 여성에 대한 폭력성의 표출로써 여성 혐오의 기본 개념인 공격성이다.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가 받았다는 무시와 멸시는 오로지 여성에게서 나온 것일까?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으며, 위생 관념이 뛰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은 대부분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지저분한 외형 탓에, 남성 여성 구분 없이 사람들은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만이 무시하고, 수치를 준 대상은 아닐 것이다. 결국, 동일한 반응임에도 여성에게 더 큰 분노를 느꼈다는 뜻이 된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상대적 약자, 혹은 여성성을 남성성의 하위 개념으로 구별했을 수 있다. 차별 역시 여성 혐오이다. 이 사건이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임을 확신하는 대목이 있다. 개인에게 느낀 분노를 여성 전체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혐오의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사례이다. 여성 혐오의 대표주자 격인 일간 베스트, 속칭 일베 유저의 모습에서도 이를 찾을 수 있다. 조별 과제에 여자 후배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음 -> 김치녀가 본성을 드러냈다. 라며 개인의 경험을 전체로 확대하는 오류를 범한다. 여기서 그들은 한국 여자들에게 분노해야 할 당위성을 찾는다.
다음으로 범행이 이뤄진 배경에 주목한다. 시간은 1시를 넘긴 새벽이었고, 장소는 노래방 공용 화장실이었다. 저녁 시간대의 노래방을 가는 것은 술을 마시기 위함이거나, 음주 후 여흥을 돋우기 위한 2차의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신 상태라는 뜻인데, 술은 사람의 자제력을 떨어뜨린다. 좁은 공간에서, 술에 취한 사람은 이성을 마주하고 자극과, 성적 충동을 느낄 수 있다. 화장실은 탈의의 개념이 포함된 장소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떨어진 남성 혹은 여성은 시각, 청각, 후각의 자극을 받으며 우발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 설계 단계에서 남, 녀 화장실을 제도적으로 나눴어야 했다. 그간 아무 대처도 없었던 이유는 국민에게 금전적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그들의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에 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무사안일주의에서 나온 행태라고 본다. 세월호 사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태도가 보여주는 또 다른 비극이다. 사유의 부족, 주어진 것만 하려는 공무원 의식 부족, 국민에 대한 관심 부족의 결과이다.
사건의 안타까운 부분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대처의 시작은 시민성이어야 했다. 나에게 해코지하지 않으니,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는 식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참극이다. 보도에 따르면, 피의자는 범행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여성을 문틈으로 지켜봤다는 점과, 동행이 없고, 용무가 없음에도 그 주변을 서성였다는 점은 누가 봐도 이상한 부분이다. 거수자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과, 실천이 우리에게 없었다.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노래방 주인에게 불안을 말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바뀌었을 수 있다. 사회는 이타적인 행동을 오지랖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사회, 착해선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에, 선행에 소극적이 되고, 불필요한 행동으로 여겨왔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탈산업화가 끼친 영향을 말하고자 한다. 탈산업, 탈공업화의 과도기적 특징을 한국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산업발전 시기엔 가장인 남성이 혼자서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가부장제의 특징인 현모양처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로 가며 여성의 노동이 국가 발전이나, 가계의 적자를 매우기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변했다. 가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문화 시민의 소양을 학습하며 의식의 변화도 조금씩 이뤄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20대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평균인 10%대로 줄어들게 됐다. 다만 물질적 변화의 속도를 의식 변화가 따라오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 시 주택 장만의 부담을 남성이 떠맡거나, 떠맡김을 당하는 문화지체현상이 그 부산물이다. 이런 문화지체현상은 여성에게도 불합리를 강요하게 됐다. 이는 많은 남성이 시대에 역행해 여성의 순종, 가부장제, 유교적 전통에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관찰할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의 구시대적인 모습을 답습하려 한다. 당연히 실제 모습과의 괴리가 발생하며, 여성, 남성에 대한 혐오가 뒤따른다. 다만 탈산업화를 겪는 나라의 특징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충돌을 최소화할 방법은 존재하는데, 언론이나 대중매체, 정책을 통해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된장녀, 김치녀 등의 분열을 조장하는 단어나 현상을 대중매체는 가십 소재로써 확대 재생산하고,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돈 되는 것이 우선인 자본주의적 사상과, 재미와 유머라는 명목 하에 불평등을 용인하고 있다.
모든 정리를 끝내고 든 생각은, 이번 사건이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 혐오, 사회의 이기심, 사유의 부재라는 고름이 쌓이고 쌓였다. 강남역 묻지마 사건에 터진 고름이 불러온 것은 분노의 파토스이다. 지금까지 일베와 메갈리아로 대변하는 남성, 여성 혐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를 이단아들의 덜떨어진 행동으로만 치부했다면, 이제는 진지한 재고가 필요하다.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다, 여성의 무식한 비약이다 등의 원색적이며 비생산적인 언쟁을 멈추고,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차별, 잘못된 사회 구조나 교육, 대중매체의 무책임한 태도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다양한 변명과 무능으로 넘기는 불평등과 불안을 더 이상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길 수 없다. 한 그루의 나무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지금이야 말로, 비판적 사유를 통해 숲을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