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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룩백>(오시야마 키요타카) 리뷰/감상문

후지모토 타츠키의 탁월한 원작을 준수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시킨.

by 우언타이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 왓챠피디아에 올렸던 글을 브런치스토리에도 기록.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룩백"은,


질투를 속으로 품고 있는 자와 동경을 겉으로 드러내는 자, 움직이는 인물을 묘사하는 자와 멈추어진 배경을 그려내는 자,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묵묵히 응원하는 자, 마지막으로 창작자와 독자 사이의 관계를 간절하면서도 찬란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성적이고도 정교한 연출과 담백하면서도 세밀한 드로잉, 기발하고도 따사로운 유머와 다층적이면서도 치밀한 플롯을 통해 벅찬 감동을 우리에게 선물했던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면서도,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물들의 생동감을 보는 이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감독의 역량과, 어떤 순간들을 더해야 스크린 앞에 놓인 이들에게 그들이 기대하지 못한 웃음과 눈물을 선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창작자의 고민이 또렷이 담긴,


만화 그 자체와 우정이라는 멋진 주제들을 다룬, 뭉클하고도 아름다운 걸작입니다.



이 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누군가의 등(Back)을 바라보는(Look) 행동은,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무척이나 중요하게 기능합니다. 작품 내내 일방적으로 쿄모토가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거나 그 등 뒤를 따라가는 순간들이 담겨있지만 어느 두 장면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되는데, 하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열렬한 팬임을 밝힌 쿄모토의 옷에 사인을 해주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최후반부에서 후지노가 쿄모토의 방으로 들어간 후 등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쿄모토의 그 옷과 재회하게 된 순간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두 친구의 관계가 마치 두 사람이 등을 맞댄 채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호혜적이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두 소녀의 상반되는 모습 또한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특히 늘 함께해 온 두 사람의 길이 둘로 나뉘는 장면에서 후지노는 외강내유적으로, 쿄모토는 외유내강적으로 행동한 것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헤어짐의 순간과 지나간 과거 속에서 쿄모토로 인해 빗 속에서 남몰래 춤을 추었던 후지노의 시간 그리고 후지노로 인해 용기 내어 집 밖으로 나오게 된 쿄모토의 시간은 서로 어긋난 채로 겹쳐지기에 관객은 자연스레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누군가가 계속 만화(영화)를 그려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믿음직한 동료이자 소중한 친구의 방 안에서 슬픔에 젖은 만화가는 자신을 뜨겁게 응원했던 독자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지켜본 이들은 치유되기 어려운 아픔 속에서도 그녀가 꿋꿋이 자신의 만화를 계속 그려낼 것임을 끝내 믿을 수 있습니다.


입체적인 내러티브 역시 왜 인간에게 만화(영화)가 필요한지를 탁월하게 알려줍니다. 또 다른 세계 속에서 서로 마주하지 못했던 두 소녀는 시간이 흘러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아마도 이는 우리 안에 깊숙이 내재되었으나 구현됨에는 이르지 못한 어떤 절절한 소망을 창작자가 대신 섬세하게 그려내어 발현시킨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화와 영화를 포함한 예술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본질적인 이유는, 이들이 우리의 손이 닿지 못한 곳에 위치한 우리 안의 환부를 대신 어루만질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애니메이션 "룩백"을 즐겁게 보신 분들은 원작 만화 "룩 백" 또한 반드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만화라는 매체의 어떤 궁극이자 하나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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