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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노라>(션 베이커) 리뷰/감상문

여인의 앞날에 이제 더 이상 흐느낌이 남아있지 않기를.

by 우언타이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얼마 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큰 영광을 차지한 작품은 션 베이커가 연출한 <아노라>이다. 나 또한 개봉 당시 이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언젠가 정리하여 글로 옮기겠다 다짐했었고, 조금은 늦은 요즘에야 이를 수행한다.



마이키 매디슨이 열연한 이 뛰어난 영화에는 서로 다른 분위기의 세 이야기가 흥미롭게 공존한다. 그러니까 달콤한 1부, 매콤한 2부, 씁쓸한 3부가 폭풍처럼 지나가는 이 드라마에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이 요란스럽게 담겨있다.


다들 알다시피 인생이란 불공평한 것이다. 치열한 생존 가운데 자신의 성(性)을 거래하는 여성 애니 혹은 아노라와, 단 한 번도 살아감의 힘듦을 느껴본 적 없을 금수저 남성 반야의 대조는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바로 그렇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두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신혼을 보내는 순간은 그야말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러다, 위험한 인간들인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놈들인지를 판단하기가 다소 애매하게 느껴지는 세 명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순간, 보는 이는 역설적으로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뜨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 이 철부지들에게 올 것이 드디어 도착했음을 직감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 몰라라 도망치는 도련님을 찾아 나서는 4인조의 좌충우돌이 시작되고, 관객은 기막힌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존재들이 겪는 개고생을 구경하며 누군가의 무책임함에 서서히 분노하게 된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상상했을 최후가 각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도했을 때, 서늘한 무력감과 축축한 외로움이 상영관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체감했다.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걸 진작부터 눈치챔과 그럼에도 주어진 상황을 차분히 수용함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이기에, 그 누구도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 것뿐.



롤러코스터 같은 이 화끈한 서사를 통하여, 차갑고도 건조한 사회를 향해 감독이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려 했는가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 다르리라 추측한다. 어떤 자는 교훈을 얻었고, 누군가는 감동을 받았으며, 또 다른 이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무언가를 경험했을 테니. 하긴, 예술에 정답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허황된 상승과 예견된 하강의 격랑 끝에서 자신이 어떤 남자에게 안기고 싶은지를 끝내 깨달은 여인의 앞날에, 이제 더 이상 흐느낌이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는 따스한 소원은, 모두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2025.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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