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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Aug 28. 2023

ep.1 하나도 맞지 않았다면 갈 수 없었을 거야

잔잔하고 조용한 담양에서 맞이한 두 번째 여행


친구와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갈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의 여행 키워드는 '힐링'이었다. 각자 바쁘게 지냈기에 둘 다 빠릿빠릿 움직이는 것보다 느긋하게 움직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힐링을 위한 장소로 동시에 '담양'을 떠올려서 바로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달까.


여행 당일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각자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친구는 청주에서 나는 부산에서 따로 출발한 후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가 없는 우리는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해서 담양에 들어가기 위해 꼭 광주를 거쳐야 했다.


광주에서 만나자마자 얼마나 깔깔거렸는지, 버스 시간이 남아서 신세계 백화점을 구경할까 하며 이리저리 밖을 거닐고 있었다.


"에헤이 야, 빨리 따라오라니까?"

"너 말을 왜 그렇게 심하게 해?"

"어이가 없다?"


깔깔깔


"요새 알바는 어때?"

"기간 끝나서 이제 안 하는데?"

"아 그래?"


깔깔깔


우리가 엄청 웃었다던 대화는 주로 이런 내용의 반복인데, 정말 별 볼 일 없는 대화를 한다. 실상 너무 친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여행 가기 전까지는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근데 이게 되게 웃긴다.


"몇 시지?"


때마침 보이는 서브웨이


"가자."


먹을 것 앞에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담양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부터 우리의 웃음버스도 같이 출발하고 있었다.


담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앞뒤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뿐이었고 우리 말고 커플 한 팀이 담양으로 여행을 가는지 캐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학교에서 밖에서 어디서든 상황극을 즐기는 우리는 수학여행 때처럼 버스 안에서 브이로그 유튜버 마냥 동영상 촬영을 자연스럽게 시작했다.(늘 둘이서만 공유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저희가 어디를 가냐면요? 바로, 담양으로 갑니다."

"오늘은 날이 정말 따사롭네요."

"추운 겨울입니다."

"그냥 그렇다 해."


버스를 한참 달리니 담양에 도착했다.


"와 담양이다..!"


휑한 터미널, 신협과 상가 건물 하나만 보였다...


"뭐야. 우리 동네 아니야?"


익숙함을 안고서 길을 나섰고, 인근에 예쁜 카페를 찾아 나섰다. 둘 다 귀찮음이 지배한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움직이는 편은 아니라서 가는 길에 찾아보고 예쁜 카페가 있으면 가자는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걸어서 7분 거리에 나름 리뷰도 괜찮은 아기자기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길을 가면서도


"뭔가 너무 친근하지 않냐?"

"그냥 우리 동네 같기도."

"그러게 근데 좋다."


깔깔깔


레몬 파운드, 초코 마블 파운드 케이크와 자몽 에이드


노란색 타일 테이블을 둔 인테리어에 구석구석 감성을 자극하는 포스터와 거울 오브제를 둔 예쁜 카페였다. 꽤나 잘 찾은 카페. 여기에 이런 아기자기한 곳도 있다며 놀래고 천천히 먹으려고 하는데...


시선을 끄는 아저씨가 등장했다. 아저씨는 카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아니 찢어 놓았다.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난닝구 입으신 아저씨를 아는가? 그런 아저씨가 갈색 슬리퍼를 신고 고양이였는지... 아무튼 캐릭터 패턴이 그려진 수면 잠옷에 패딩을 입고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셨다. 여유 있게 다리를 꼬시더니 느긋하게 창가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하셨다.


엄청난 세계관이었다.


여행지였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이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심지어 단골임이 드러나는 그 분위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보면서 점점 저 당당함과 여유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게 하게 만든 그 아저씨는 과연 누구였을까.


겨울이라서 해가 어느덧 지려는 5시쯤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다음 날 가려는 죽녹원이 있어 미리 한 번 더 가보자며 또 걷기 시작했다.


분명 겨울인데, 따뜻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잘 만들어둔 산책길에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햇살 속에서 사진을 남겼다.


“훌쩍 “

“울어? “

“추워. “

“목도리 줄까? 난 따뜻하게 입었는데. “

“그래! 고마워! “

“참내.”



우리가 정말 여행 날과 여행지를 잘 선정했다. 끊임없이 떠들어도 한적한 평일이었기에 둘이서 온 세상을 가진 것 마냥 깔깔거렸다. 흘러나오는 노래마저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여길 온 걸 환영한다며, 잘 쉬고 가라며 인사하는 것 같았다.


친구와 내가 뚜벅이를 마음먹지 않었더라면 오기 힘들었을 거고, 조용한 관광지를 원하지 않았더라면 오기 힘들었을 거고, 애초부터 날짜와 광주 가는 교통편, 숙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이 상황이 오기까지 이미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오기까지의 대화에서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과연 재미가 있었을까?


이런 모든 생각들이 다 겹치면서


“OO아, 너랑 같이 와서 진짜 좋다”

“나도 좋아”


찰칵


“너무 예쁘다. 일단 걷자”

“헐헐 노래 너무 좋다. “

“야 저긴 뭐 하는 곳일까?”

“무슨 노래지?”

“저기 무슨 대학교 같네.”

“...”


깔깔깔


“야 헐헐 여기 건너보자! “

“오 좀 무서운데?”

“잠시 여기 봐봐. “

“동영상인데?”

“2C"


깔깔깔


저녁을 먹을 시간이 왔고 우리는 신중했다. 차가 없는 우리에게 인근에서 먹고 들어갈 가게는 마땅치 않았고, 숙소도 산 아래 있는 감성 숙소였기 때문에 숙소까지도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일단 다시 카페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하나로 마트를 갔다. 주변에 오면서 그 흔한 치킨집, 피자집조차 볼 수 없었기에 우린 하나로 마트에서 신중히 고민하다 밀키트를 구매했다. 쭈꾸미 볶음 그리고 과일소주. 여행에는 술이 빠질 수 없고, 쓴 소주는 싫고, 배부른 맥주도 싫고, 기분은 내고 싶어서 맛있는 과일소주를 샀다. 무거운 장바구니 봉지를 들고서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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