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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뇽씨 Mar 20. 2021

물렁한 꼴찌, 지독한 년 되기

죽음을 부르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공부했어요.

"그건 네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서 그래."

"그냥 무조건 열심히 공부해. 대학 문패가 네 인생의 꼬리표야."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이니, 힘내서 견디는 게 어때? 이때까지 내가 봐 온 너의 선배들도 다 그랬는데.."

  소위 말하는 전국의 중학교 '전교 TOP'들이 모인 우리 고등학교에서 전학을 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거나, 자존감이 낮아져서 힘들다는 흔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선생님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들이다.

우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매 순간을 바쳐야 한다고, 학업이 우리의 본분이며 이를 위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인간성보다도 성적 향상과 학업에 매진하는 게 옳은 것이라고 배웠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안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패배할 테니까.


  매일 아침 5시 30분, 늦으면 6시에 일어나 등교하면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한다.

문을 열자마자 옅은 화장실 냄새 때문에 코가 기분 나쁘게 따갑다. 학교 건물이 오래된 탓이다.

복도를 지나가면 모의고사 백분위가 99.9 이상인 학생, 2회 연속 모의고사 백분위가 오른 친구들의 사진을 '수능 지존', '일취월장'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둔 게시판이 보인다. 나는 한 번도 그 게시판에 사진을 올려보지 못했다. 그 맞은편에는 모의고사 등수 표가 붙어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워진 점수를 보며 우리는 아래를 보고 강해 지거나, 위를 보고 초조해한다. 내 점수는 바라볼 아래가 없는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은 70분, 수업시간 가운데 끼어 있는 시간이라 공부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나른해지기 쉬우니 이때는 매점에서 1200원짜리 빵을 사 와서 점심 대신 먹으며 인강을 듣는다. 식당에 올라가서 여유롭고 배부른 식사를 하고 싶지만, 속도 안 좋고 시간도 없다. 때로는 함께 먹을 친구가 없기도 하다.

 오후 11시 21분까지 자습을 하고 나면 불이 모두 꺼진 학교에서 혼자 마지막으로 하교하게 된다. 교실로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도 벽을 더듬어 불을 켜면, 5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두침침한 형광등이 희미하게 긴 복도를 밝힌다. 멀리서 수위 아저씨께서 어서 나가라고 소리 지르신다. 점호에 늦으면 벌점이니 어서 기숙사로 가야 한다. 5분 거리를 3분 안에 뛰어간다.

 기숙사에 도착하면 씻고 7분 정도 침대에 누워 점호를 기다린다. 점호를 하고 나면 바로 자고 싶지만, 그러기에 나는 공부를 너무 못한다. 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옆에 침대가 있으니 자꾸만 가서 자게 된다. 그래서 나는 왼손에는 수학 문제집이든, 사회과목 개념 필기든 뭐든 공부할 것을 들고, 오른손에는 커피를 챙겨 휴게실로 나간다. 그리고 잠이 올 때까지 공부한다. 보통 새벽 2시가 넘어갈 때쯤 잠이 왔던 것 같다. 때로는 딱딱하고 차가운 휴게실 책걸상에서 엎드린 채로 푹 잠이 들어 일어나 보니 아침인 일도 종종 있다.

2학년 2학기가 되고 3달 가량을 이렇게 살았다.


  그리고 내가 얻은 건? 백분위가 정확하게 32퍼센트 오른 모의고사 성적을 받아냈다. 학교에서 전례에 없던 기막힌 모의고사 성적 상승이었다. 성취의 경험으로 더 단단해졌다고 뿌듯해하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일주일 정도 기뻤던 것 같다. 꼴에 교내 모의고사 등수도 꽤 올랐으려나 기대해봤지만, 문과 26명 중 22등이었다.

  한편 내 건강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밥을 굶고 공부하는 생활습관과 빈 속에 섭취한 카페인 때문인지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고 매일 구역질과 매스꺼움에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다.

점심시간, 저녁시간, 쉬는 시간 모두 잠을 보충하거나 공부하는 데 사용하다 보니, 주변에 작은 일 부탁할 친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나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공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생기면 그 즉시 빠지게 될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깊은 바다?

돈 없고, 권위 없고, 공부 못해서 지금까지 받은 상처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압박감?



  얼마 전 나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상담실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모둠끼리 둘러앉아서 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힘들었던 점을 쓰고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떨어지는 성적과 부모님의 기대가 힘들어.",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어." 등등 비슷하면서도 다양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참 이상한 대답을 했다. "어떤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 힘들다고 생각하면 천근만근 힘든 일이 되겠지.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잘됐네'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넘기면 딱히 힘들 것도 없다고 생각해."


그때 나에게 인생은 사색과 탐구의 대상이 아닌,
앞뒤 가리지 않고 부딪혀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저렇게 독을 품고 공부하던 시절이 어떻게 보면 2019년 한 해 중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신체적 피곤함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우울증의 무기력함과 답답함이 스며들 틈이 없었고, 어찌 보면 나 자신을 혹사시키며 내가 힘들어하는 것과 내 건강이 망가지는 것을 보며 이상한 쾌감 같은 것이 들기도 했다. '반드시 1등을 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이 세상에 당당하게 증명해 보이겠어.'라는 생각으로 독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매일 학교 책상에서 엎드려 자던 내가 3달간 한 번도 책상에 엎드리지 않았다.

  고3 이후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이라도 무엇을 이루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꼴찌가 간절히 탈피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의 두 배로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감정적으로 힘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 때문인지, 조금은 우울한 병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느끼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의식 중에 마음을 조금씩 할퀴고 있던 것들이 있었고, 점점 강하게 느껴지는 절망감과 무력함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다. 독을 품고 공부했던 2달 중에도 여러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지는 못하셨다. 무의식 중에 나를 잠식해오던 것들에 나는 결국 또다시 무너졌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은 보였다.

감정과 생각을 바꾸어 행동을 개선할 수 없다면,

반대로 행동을 먼저 바꾸어 감정과 생각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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