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엄마와 함께 사는 딸의 이야기

45세 엄마의 파킨슨병 진단

by 크로와상

'긴 병에는 효자 없다.'


이 말은 내가 매우 공감하면서도 공감하고 싶지 않은 문구이다. 오랜 시간 지병을 앓고 있는 부모님을 모시면 보호자가 되는 자식도 그에 못지않은 상당한 고통을 가진다. 하지만 환자인 부모님을 모시고 본인도 힘들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체력과 정신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마음을 돌보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 조금씩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인 겨울 엄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엄마의 나이 45세, 파킨슨병이라는 질병을 앓기에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 해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했다. 너무 오래되어 이혼과 진단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는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에 비해 책임감과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는 결혼 전부터 하던 도박을 끊지 못해 밖으로 나돌아 다녔고 엄마는 나를 키우며 온갖 일을 다했다.


바지를 집는 집게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공장, 슈퍼, 돼지고깃집, 갈빗집, 서울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한정식 솥밥 식당, 장어집, 유치원 급식실, 아파트 청소, 모텔 청소, 파출부 등등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앨범을 보면 어렸을 때 했던 엄마의 여러 가지 부업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색종이를 한 10장씩 비닐에 넣어 포장하는 일, 학알을 접는 종이를 상자에 포장하는 일, 양말 미싱, 실밥 따기, 지우개 포장 등 집 안팎에서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셨다. 엄마가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도박빚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와 자식들, 심지어 외할머니 이름까지 팔아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사채를 쓰기도 했다. 엄마는 이에 반해 다른 사람들에게 빚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아빠가 진 빚이었지만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갚았다.


문제는 돈을 탕진하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버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혼 전까지 공무원 생활을 했었고 결혼 이후에는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에 엄마에게 시간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기에 몸으로 하는 노동을 했고 15년가량 아버지에게 시달렸던 엄마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어했었다. 바람도 폈고 사채업자가 집으로 찾아와 돈을 갚지 않으면 나와 동생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마를 협박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이 엄마의 섬망으로 자주 발생한다.) 나 또한 엄마를 너무나 힘들게 하고 우리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이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라리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할 정도였다.



이 모든 고통들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어린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유전적인 질환은 아니었다. 엄마의 오래된 친구는 함께 식사할 때 엄마가 손을 너무 많이 떠는 것 같다며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기를 권유했다.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데 어쩐 일인지 엄마는 집 근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바로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낫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악화만 되는 병이라고 해서 더 힘들다고 한다. 요즘같이 좋은 세상, 암도 치료한다는 세상에 낫지 않는 병이라니.. 완치가 되거나 치료가 된다는 희망 자체가 없는 병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20년이 흘렀다. 엄마 나이 65세, 나는 35세.


이 잔인한 병과 함께 살아가는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느리더라도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엄마가 이 병과 싸워나가는 동안 엄마와 나, 동생 모두 마음의 상처들이 많이 생겼다. 엄마는 몸도 아프지만 가족을 비롯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그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보호자인 나도 이 상황으로부터 또 주변인들에게 받는 상처를 치유할 여유가 별로 없고 내 마음을 돌보는 일들이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어디 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환자와 사는 일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부정적인 감정에 침몰되기 너무나 쉽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가족이 유일하다. 친구에게 가끔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나눠주고 싶지 않아서 많이 자제한다. 하지만 가족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줄 수 없으며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의 응어리가 다 해소되지 않는다. 여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내 마음도 돌보고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고 싶다. 왜냐하면 여러 힘든 상황에서 이 일을 직면하고 겪어내야 하는 사람이 결국 나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그때마다 나는 외롭고 누가 나를 도와줬으면 위로를 건네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별 뜻 없이 '긴 병에는 효자 없다'라는 말을 하면 마음이 참 미어진다.



위로를 받고 싶은 나의 마음에게 그리고 이 글을 볼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참 고생이 많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짧은 글들로 나의 응어리들을 내뱉으며 시간이 갈수록 몸이 불편한 엄마와 잘 지낼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