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특수한 일상이 되는 일
식당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계절이 바뀌면 티셔츠를 사러 옷가게에 가는 일..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엄마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큰 미션이다. 이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몸을 내게 의지해서 에너지가 더 드는 것은 물론이며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미션은 엄마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무례한 말에 무뎌지는 일이다.
엄마는 '먹는 게 다 머리카락으로 가는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실 정도로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고 머리숱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미용실도 자주 가야 하는데 그게 미안했었는지 엄마는 비용이 저렴한 미용실을 가고 싶어 하셨다. 기존에 다니던 곳은 비싸기는 했지만 몸이 불편하고 소통이 어려운 엄마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해서 엄마도 만족스러운 눈치였지만 수입이 없어서인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돈을 못 벌어도 소비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데 엄마의 삶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에 매우 고단했다. 나 또한 엄마가 돈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 결국 엄마의 고집으로 동네의 한 미용실에 갔다.
엄마가 시술을 받는 동안 나는 카페에 가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시술받는 시간이 길고 자리가 비좁아서 앉아있을 수도 없었으며 사정 설명을 했을 때 미용사분은 친절하게 잘해주시겠다고 했기에 믿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시술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미용실로 갔을 때 뭔가 이상했다. 샴푸 후 타월 드라이만 한 상태로 머리가 축축한데 시술이 끝났다며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미용사는 엄마와 나를 쫓아내듯이 행동하고 엄마도 가자 하시길래 우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어보니 기가 찼다.
그 미용사는 엄마에게 "이렇게 몸이 편찮으셔도 여자라고 예쁘게 하고 싶으셔서 여기까지 걸어오셨나 봐요?"라고 했으며 계속해서 떨리는 엄마의 증상 때문에 시술이 힘드니 드라이는 집에 가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평소에 바람이 아주 조금만 불어도 머리가 시리다고 하는데 머리가 축축한 상태로 밖에 나왔으니 너무 춥다고 했다.(여름이었다) 심지어 그분은 "몸이 이렇게 불편하시면 이런 작은 데 오시지 마시고 비싼 데 가서 시술받으시라, 나 혼자서는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고 한다.
이런 불쾌하고 속상한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나의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따져 묻고 싶기도 하다. 당신은 평생 남들과 건강한 몸을 언제까지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말이다.
얼마 전 조카의 생일인지라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갔다. 맛집의 주말 점심은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많다. 북적북적한 쌈밥 집의 중앙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은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파킨슨병의 증상 중 하나는 몸이 떨리고(정확히는 손) 계속 베베 꽈지며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앞으로 고꾸라지려고 하기에 허리가 굽어 있다.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쉽게 말하면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과 같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그런데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없어 텔레비전에서의 모습을 보고 표현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자신과 다른 사람, TV에서나 볼법한 증상을 보이는 엄마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한 각도에서 날아온다. 몸을 아예 뒤로 돌려 앉아 식사하는 내내 엄마를 구경하는 할머니, 동물원 속 원숭이를 바라보는듯한 두 자녀와 그들의 부모님, 사위에게 쌈을 싸주면서 나갈 때까지 우리 가족을 관찰하던 한 노부부 등등.. 떨리는 손과 배배 꽈지는 몸 상태로 식사를 하면 식탁과 의자, 바지에 음식물을 계속 흘릴 수밖에 없는 엄마를 바라보는 그들을 나는 다시 바라본다. 우리에게 시선을 거두시고 우리도 편하게 식사를 하고 싶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은 무뎌진 듯하다. 어쩌면 무뎌진 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손떨림 증상이 악화되던 시기에 외출을 하면 엄마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의 떨리는 손을 계속 쳐다봤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예민하다며 타박도 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정말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타인이 엄마의 증상을 알아채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냉정하지만 결국 엄마가 그 시선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간과한 것은 엄마뿐만 아니라 나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타인이 나와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에 온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밥을 먹으러 가고 머리를 하러 가는 평범한 일상이 엄마와 나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는 몸이 불편하다고 함부로 대하는 일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들과 다른 외형을 가졌다고 혹은 증상을 보인다고 동물원 속의 원숭이를 바라보듯 구경하는 일도 있다. 예고라도 해 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 외출을 할 때면 언제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때로는 엄마와 함께 밖에 나가는 나가는 일 자체가 내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남들이 나 이상하게 볼 텐데 지금 나가도 괜찮을까?" 외출 전 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자신의 몸도 힘들고 남들의 시선도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밖에 나가고 싶어 하신다. 파킨슨 병은 증상이 더 나아지지 않는 병이기에 이마저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의 행복한 외출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 자신과 다르다고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아줬으면 한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특별한 일상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약자가 되는 일은 순식간이며 특히 노화가 오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남들과 다른 겉모습을 가지는 일은 불의의 사고나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나의 일이 될 수도 혹은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사회적 약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미래에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