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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청 Jun 27. 2024

건강검진, 그리고 터져버린 설움

로묘일기6

2023-4-1

건강검진을 받았다. 작년 11월과 올해 1월의 그래프만 비교해 봐도 로이가 꽤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게 보였는데, 이번엔 더 좋아졌다. 작년 11월엔 진짜 무지개다리가 눈앞에 왔었는데 이젠 살짝 멀어졌다. 의사쌤 설명으로 요소 수치는 위험단계(15.1)에서 정상 범위(7.2)를 거쳐서 안정적인 단계(5.9)에 도달했고, 크레아틴 수치는 아직 정상범위 보다 높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고 반가운 소식. 그리고 이번달부터 수액을 한 달 주기로 바꾸게 됐다. 작년 11월엔 일주일에 세 번이었다가 올해 초엔 일주일에 한 번으로 드디어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의사쌤은 항암약을 한 번 먹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조금 건강해져서 할 수 있는 조치고 제안이었다. 수용을 하는 건 나의 판단과 결정에 달린 거지만. 


건강검진을 받았다. 작년 11월과 올해 1월의 그래프만 비교해 봐도 로이가 꽤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게 보였는데, 이번엔 더 좋아졌다.


병원을 나서서 집에 도착해 와이프에게 신이 나서 설명을 했다. 건강이 좋아졌고, 수액도 이제 한 달에 한 번 맞추면 된다고. 그러다가 항암약을 먹이는 게 당연하다는 듯 신이 나서 말한 게 화근이었다. 순간 와이프의 얼굴을 어두워졌고 "모든 걸 다 해 줄 수는 없는 거야 가이드라인을 정해야지!"라고 말했고 그걸 감정적으로 곡해해 버린 나는 "그럼 살아있는 생명을 포기하자는 거냐?"라고 쏘아붙이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우린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병원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100만 원이 넘게 든 달도 있었고, 그보다 적게 든 달도 있었다. 대중없었다. 월별 비용의 편차도 컸고. 와이프는 그 가이드라인을 정하자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순간 설움이 터져버려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건 현실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고민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함 참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와이프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결국 결혼하면서 로이를 데려온 건 나였으니.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케어를 해준 와이프의 자세는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사십 평생 집에서 동물을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여자에게 로이는 미지의 세계였을 테니. 물론 와이프도 한번 거둔 생명은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전제엔 공감한다. 그걸 실행하는 방식이 다를 뿐. 아니 어쩌면 와이프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매달 가용할 수 있는 비용과 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 후에 노묘케어 관련 서적(고양이 말기 간호ㆍ임종 케어 안내서-야옹 서가)을 보며 알게 된 거지만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걸 다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니. 어떤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결국 돈 때문에 조치를 안 하려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건 현실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고민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매달 병원비로 100만 원 이상 혹은 그 이상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편적인 수준의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더욱더.     


와이프와 여러 시간 이야기를 거쳐 상황이 정리될 무렵 로이를 보니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어서 심술이 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자니 다행이다.


무지개다리 앞까지 다녀온 노묘를 반면 넘게 케어하다 보니 깨달은 건 고양이를 사랑하는 감정적인 마음이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에 휩쓸리면 되레 오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처럼 좋은 의사쌤과 병원을 잘 만난 케이스가 아니면 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고양이의 건강은 더 악회 될 수도 있으니... 때로는 선하지 않은 의사도 분명 존재할 테니 말이다. 물론 대다수는 의사로서 소명의식과 직업윤리가 있지만.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은 매달 30만 원이었고 그 이상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면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입출금이 가능한 적금을 마련해 변수에 대비하도록 했다. 그렇게 와이프와 여러 시간 이야기를 거쳐 상황이 정리될 무렵 로이를 보니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어서 심술이 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자니 다행이다. 건강도 좋아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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