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떠난 첫 여행
한국은 두꺼운 코트가 필요한 날씨였다. 수은주가 0도를 뚫고 내려갈 준비를 하던 11월. 10월 말 4년 5개월간 다녔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주변에서 물으면 그냥 다른 매체에서 글을 써보고 싶어서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휴식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2011년은 꽤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3월엔 교통사고로 아빠를 멀리 떠나보냈고, 8월엔 급성 맹장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을 했다. 그 외에 자잘한 것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2011년엔 일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매달 마감을 했으니 당연히 휴식이 필요했었다. 마지막 출근을 일주일 앞둔 날 친구에게 말했다.
“오키나와에 가야겠어!”
“응?”
“오키나와에 갈꺼야!”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왜 오키나와에...”
“오키나와 여기 너무 매력적인 곳 같아”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친구에게 나는 가방에서 최근에 읽고 있던 책을 한 권 집어 들어 보여줬다. 마감 후에 읽기 시작한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가 화근이었다. 일본의 남국이니, 아시아의 하와이니 하는 수식어는 다 필요 없었다. 그냥 소설 속의 배경 오키나와가 너무 가고 싶었다. 11월 중순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야말로 대책 없이 남쪽으로 튀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문의해서 비즈니스호텔을 15일간 연박으로 끊은 것 빼고 아무 준비 없이 오키나와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떠났다. 휴식이 필요했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무 준비와 계획도 없이 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뼛속까지 깊이 박힌 귀차니즘과 첫 여행이란 약간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출장으로 도쿄를 한번 가본 적은 있지만 내 의지로 한국을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 이었으니... 준비를 안 해서 여행의 만족도가 높았던 건 아닐까 라는 합리화를 해본다. 망한 여행의 기준점이 애초에 없으니까. 물론 망한 여행이라도 해도 글쟁이에겐 좋은 소재가 되지만.
짐을 챙겨 캐리어에 담고 잠을 자려 했지만, 도통 오질 않았다. 결국 새벽 3시 반쯤 잠자는 걸 포기하고 남쪽으로 튀어 1권을 읽기 시작했다. 왠지 지금 잠들었다가는 10시쯤에나 눈을 뜰 것 같았고, 그 시간이면 비행기는 아마 나하 공항에 착륙 준비를 할 것이니. 8시 비행기를 타려면 잠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참 무지했던 것이, 오전 10시 이후 비행기 였다면 잠을 잘 수 있지 않았나 싶어서. 15일 일정의 여행인데 꼭 짧은 여행처럼 비행기를 아침 일찍 잡아서... 아무튼 비행기를 간신히 타고 기내식까지 잊은 채 숙면을 취했다. 물론 나중에 챙겨 먹긴 했지만.
공항에서 호텔까지 픽업을 해준 가이드는 “나하 시내에서 구경하는 것도 좋은데요, 그래도 추라우미 수족관은 꼭 가보세요. 오키나와는 그걸 꼭 봐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사동’이라는 이름의 한식집에서 나에게 밥을 한 끼 사면서 “한식은 이걸로 마무리 하시구요 내일부터는 현지식 위주로 드세요!”라며 지도와 관광패키지 안내 책자를 주고 떠났다. 국제거리를 조금 걸어보려다가 그냥 호텔로 들어와서 한 잠잤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탄다고 거의 날을 새다시피 하고 왔더니 너무 졸려서.
한 잠자고 눈을 뜨니 이미 어둑한 밤이었다. 여행와서 이래도 되나 싶은 약간의 반성과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국제거리를 잠시 걸었다. 다행히 호텔은 국제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컵라면, 그리고 맥주를 한 캔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오키나와 첫 식사 치고는 아쉬웠지만, 솔직히 그렇게 음식을 중요시 하는 식도락은 아닌 편이라서 나름 만족 했다. 그리고 가이드가 준 지도를 보며 추라우미 수족관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봤다. 아무튼 그렇게 오키나와 여행 시작. 그리고 오키나와 백수생활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