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못 하는 게 많지만 이혼은 하지 말자

by 나무

#1. 큰 아이 신발을 주문했다고 톡이 온다. 춘은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신발을 많이 산다. 나는 편한 운동화 한 켤레로 헤질 때까지 신는다면 남편은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춘이 봤을 때 나는 멋도 취향도 없는 사람인 거고 내가 볼 때 춘은 신발에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거다.

#2. 요즘 집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신다. 마시다 보니 점점 좋은 원두를 찾게 되고 그 원두를 잘 내려서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세계 바리스타 대회 챔피언이 하는 부산의 모모스 커피에서 원두를 주문하고 커피 저울을 샀다. 춘이 볼 때 나는 커피 하나 내려마시면서 저울까지 사는 사람인 거고 내가 볼 때 춘은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인 거지.

#3. 분명히 그냥 대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서로 기분이 상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점점 말이 많아지는데 그럴 때 춘은 "그만해라"를 연발한다. 아니, 나 아직 할 말 많은데? 나는 말로 내 생각을 풀어내고 상대방 얘기를 듣고 싶은데 춘은 기분이 상해질 것 같으면 대화 자체를 차단해버린다. 춘이 봤을 때 나는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고 내가 볼 때 춘은 갈등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벽을 치고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다.

#4. 큰 아이는 요구가 많고 주관이 확실한 타입이다. 나는 들어줄 때는 화끈하게 들어주고 거절할 때는 단호하게 하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춘이 볼 때 나는 아이가 해달라는 건 다 들어주는 무른 엄마이고 내가 볼 때 춘은 허용과 비허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그저 안된다고만 하는 아빠다.

#5. 아이들 재우려고 침대에 누었다가도 덜 읽은 책이 있어 힘겹게 일어나는 나를 보며 춘은 뭐 그렇게까지 책을 읽냐고 말한다. 나는 풋살, 스크린 골프, 그리고 여기에 곁들이는 빠지지 않는 음주로 주 5일을 꽉 채우는 춘을 보며 뭐 그렇게까지 놀고 싶냐고 말한다. 춘이 볼 때 나는 죽자고 책만 읽어대는 사람이고 내가 볼 때 춘은 술 먹고 노는 게 아직도 좋은 40대 아저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와 산과 들을 좋아한다. 느긋하게 걷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들이 공부에 치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길 소망한다. 똑같은 일상에 지치다가도 가슴 설레게 하는 공연을 보러 가길 원하고, 외식도 좋지만 집에서 요리해서 함께 먹는 것도 즐긴다. 이제는 서로의 취향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존중해주려고도 한다. 부부로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의 다른 것을 깎고 다듬어서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놔둘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30대에는 어떻게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버리고야 말겠다는 전투력이 높았다면 이제는 순간적으로 울컥하고 싸워볼까 싶다가도 한 김 빼내고 흘려보내자고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는 목록을 수백 가지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 그래도 이혼하지 말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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