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사 눈뜨는 대목에서 울다
몸이 개운하지 않은 아침이다. 날은 쾌청하고 좋은데 이상하게 몸은 찌뿌둥하고 으슬으슬 춥기까지하다. 다음 주 열리는 첫 글쓰기모임에 읽어가야 할 책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책장에서 꺼내와 읽기 시작한다. 한때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선물을 많이 했다. 내가 갖고 있는 책도 혹시 주었나 했는데 다행이 책장에 있다. 다시 읽으니 또 새롭고, 글은 쓰고 싶다면서 시작도 하지 않는 나를 떠올리며 반성한다. 100페이지가 넘어갔는데도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는다. 안되겠다싶어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나간다. 팟캐스트에서 여둘톡을 재생하며 걷기 시작한다.
언니들은 말을 천천히 한다. 상대방 말을 잘라먹거나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 성미 급한 누군가 들으면 답답하다고 할 만큼 '천천히' 말한다. 그런데 그건 게으르거나 성의가 없거나 해서 천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눌러서 말해 주는 정성 가득한 느림이다. 그래서 나는 쫓아가는 기분으로 언니들의 말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상한 배려를 받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저 길을 걸으며 언니들이 내 손 잡아주고 등 떠밀어주는 것 같다.
'컨디션이 안 좋아? 언니들이랑 얘기하면서 좀 걸어볼래? 그럼 한결 좋아질꺼야'
그리고 정말 그랬다. 오늘은 언니들이 즐겨가는 호프집에서 우연히 사장님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60대 여성의 삶을 들여주었다. 호프집에서 먹은 맛있는 안주의 비법에서 시작해서 사장님이 즐기는 음(악)•미(술)•체(육) 활동과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은 인생 역정까지 흘러갔다. 그리고 이자람님의 공연 소식까지.
집에 돌아와 이자람님의 '심청가'의 한 대목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니만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심봉사 눈뜨는 장면인데 갑자기 엄마 아프던 때가 오버랩된다. 이렇게 예기치 않게 불쑥 불쑥 떠올라버린다. 엄마가 수술때문에 목 부분에 관을 삽입했고 그것때문에 입원 내내 말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엄마의 회복이 늦어져 6개월 가량 말을 못하고 병원에 있었다. 그해 겨울 지훈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집에서 부산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간병인과 병원에 있었고 문자로 가끔 소통하는 정도였는데 엄마 번호로 전화가 왔다. 간병인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였다. 어눌하고 부정확 발음이지만 애써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로
"진아, 엄마야"
하는데 나는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때부터 엄마 엄마 엄마 부르면서 그냥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때 같이 울었을까? 심봉사가 청이를 만나고 눈을 뜬 것처럼 엄마가 마치 처음으로 말을 한 것 같았다. 죽을 것 같던 엄마가 살아 돌아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처럼.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엄마지만 이렇게 수시로 내게 온다. 슬픈 기억과 함께나마 엄마가 나에게 찾아온 것만 같다. 눈물 콧물을 닦아내고 커피를 내린다. 엄마랑 같이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