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휴공간 대여 중개 플랫폼 ‘쉐어잇’ 박상준 대표
모든 사건은 물리적 공간에서 시작된다. 메타버스와 VR/AR 산업이 각광받는 요즘이지만, 아무리 가상현실이라도 ‘어딘가에 실존하는’ 공간 속 개인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테면 VR 고글을 쓰고 가상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도, 그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휴공간 대여 중개 플랫폼 ‘쉐어잇’(대표 박상준·최혜훈)은 현실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곳이다. “상상 가능한 모든 공간을 연결한다”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유휴공간을 발굴해 대중 앞에 선보인다. 지난 2월 24일 서울 강남구의 쉐어잇 본사에서 박상준 대표(39)를 만나 공간 비즈니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 봤다.
“쉐어잇은 쉽게 말해 에어비앤비의 사업공간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스트는 자신이 보유한 어떤 공간이라도 빌려줄 수 있고, 유저는 목적과 비용, 입지에 따라 적합한 유휴공간을 찾아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죠. 시간 단위로 쪼개어 공간을 대여할 수 있어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효율적인 공간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어요.”
쉐어잇은 공간을 특정 기준과 잣대로 규정짓지 않는다. 플랫폼에 입점할 공간을 섭외하거나 파트너십을 맺을 때도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은 없다. 2016년 창업 후 4년 가량은 중·고등학교 실내 체육공간, 대학 캠퍼스 유휴공간 대여에 집중했지만, 이후 공간 비즈니스를 확장해 지금은 60여개 카테고리에 약 5000개 공간이 입점되어 있다. 소수의 번듯한 공간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는 공간 풀(pool)에 주력한 결과다.
“학교 실내 체육시설은 학생 사용시간을 제외하면 50% 정도는 비어있어 성인 생활체육 공간으로 활용하기 적합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중·고등학교 시설 대관이 막혔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도 어려워졌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공간들이 있었습니다. 소규모 파티룸이나 스튜디오, 사설 스포츠시설 같은 곳들이죠.”
실제 2021년 본궤도에 오른 쉐어잇의 소규모 공간 대여 서비스는 성공적이었다. 코로나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2021년 매출은 전년보다 40% 이상 증가했고, 올해 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00% 성장했다. 농구, 풋살 등 운동 모임은 물론 생일파티나 동창회 등 친목 모임까지 소규모 이벤트 공간 수요가 주효했다.
더 흥미로운 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공간 수요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2021년 한해 기준 쉐어잇의 전체 공간 대여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카테고리는 ‘촬영 로케이션’으로 약 4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펜데믹 상황에서 OTT 등 영상콘텐츠 제작이 확대되면서 촬영 현장, 배경으로서의 공간 수요가 급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화를 만들 때 로케이션 비용이 30% 정도라고 합니다. 제작자 측에서 직접 촬영공간을 대여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절차가 까다롭죠. 학교나 공공시설을 빌리려면 공문 보내고 협의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CF나 웹드라마 같은 영상은 가정집이나 카페처럼 작은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막상 그런 프라이빗한 공간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아요. 저희는 공간의 모습과 구조, 크기, 위치, 이용료, 조건 등 제반 정보들을 제시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좋은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영상콘텐츠 제작이 아닌 소비의 장으로 활용되는 소규모 공간들도 있다. 아이돌 스타의 온라인 콘서트를 함께 관람하며 공연의 감동을 대리만족하는 팬덤 커뮤니티가 대표적이다. 실제 BTS 온라인 콘서트 당시 파티룸이나 스튜디오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됐다고 한다.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이들이, 큰 화면과 생생한 사운드로 함께 공연을 즐기고자 모인 것. 흔히 ‘집콕’이란 수식어로 대변되는 비대면 활동조차 공간 커뮤니티의 역할이 중요해진 셈이다.
쉐어잇이 바라보는 국내 공간대여 중개 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다.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스스로를 위한 소비 욕구가 커지면서 ‘생활공간’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 데 따른 전망이다. 지금은 스포츠 및 촬영 공간 수요가 높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또 어떤 공간들이 주목받을지 모른다. 쉐어잇이 당장의 성과보다 ‘연결’에 치중하는 이유다. 폭넓은 공간, 그리고 다양한 잠재소비자와의 연결 말이다.
“공간에 대한 수요는 어디에나 있어요. 운동이나 레저, 취미 생활을 하려 해도 공간이 필요하고, 기업 비즈니스에도 그때그때 필요한 공간들이 있죠. 오프라인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면, 그건 반드시 공간에서 일어나요. 저희가 다른 회사와 협업해 공간을 제공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만날 수도 있죠. 카카오톡이 메신저 서비스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이 된 것처럼, 쉐어잇의 목표는 공간 인프라로 오프라인 활동의 거점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