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방식이 죽은 옛 것이 되지 않도록

by 최기형

‘내 이름은 빨강’은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쓴 소설로 1998년 작품입니다. 1591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술탄 휘하의 궁정 화가를 둘러싼 이야기로서, 이슬람 문화와 역사, 미술 양식 등을 만나 볼 수 있는데요. 세밀화와 원근법을 소재로 한 "전통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37490019


My Name is Red

소설을 간단히 요약하면, 오스만 제국의 궁정화가 ‘엘레강스’가 이스탄불 외곽의 버려진 우물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시체가 된 엘레강스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범인의 정체는 모르고, 죽은 엘레강스, 딸 세큐레, 그를 흠모하는 카라, 또 다른 궁정화가 올리브/나비/황새, 화원장 오스만 등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살인사건을 추리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 간단치 않은 이유는, 책이 너무 두꺼워요. 2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730 page 분량입니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화자가 달라지며 전개되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14년 기준으로 1권은 24쇄, 2권은 9쇄를 찍었으니 2/3 이상이 1권 읽다가 포기했다는 뜻이겠죠?


세밀화(miniature)가 그려낸 신의 시선

오스만 제국 궁정 화원에서는 페르시아(이란) 화풍이 적용된 ‘이슬람 세밀화’가 정통 화풍이었습니다. ‘신(알라)의 시각’을 그림으로 구현하여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화폭 구성, 평면적/투시적 표현 등 일종의 절대성을 녹여내는 거죠. 소설에서 세밀화의 손꼽히는 경지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는 ‘휘스레브와 시린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휘스레브가 목욕하는 쉬린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이 장면은 가까운 것과 먼 것의 구분 없이 모든 사물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1차원적 관점.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izami_-_Khusraw_discovers_Shirin_bathing_in_a_pool.jpg


이건 서양미술사 관점에서 보면, 중세 미술의 영역입니다. 종교화라는 건, 신이 보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를 그려내는데요. 구도와 형식은 공식화되어 있고, 작품의 소재가 되는 이야기(종교)도 정해져 있어서 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카톨릭의 이야기를 전하고 종교적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림을 활용하는 측면인데,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에 가서 중세미술 걸작을 보더라도 감흥이 떨어지는 이유도 계속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고요. 여기에는 그린 사람만의 특징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원근법이 그려낸 인간의 시선

세밀화가 중심인 세상에서는 그렇게 맞춰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누군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가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중심적 회화 스타일을 보고 온 거죠. 술탄도 새로운 화풍에 관심을 갖고 베네치아 스타일의 회화집을 그리도록 비밀리에 지시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려는 세력과 기존 전통을 유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생기게 되고, 이 부분이 ‘엘레강스’가 살해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원근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건축한 브루넬레스키가 생각해낸 방식인데요. 키워드는 바로 ‘시점(視点)’입니다. Point of View,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 점(화가의 눈)이 있고 그 점에서 바라본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화가가 해석한 세계, 새로운 시각, 스타일이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현실을 그리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하여 현실답게 그리게 되고요. 결국,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사고가 중요해지는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는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서양 철학의 발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앞서 각 챕터마다 화자가 달라진다고 했는데요. "내 이름은 카라", "나는, 세큐레" 와 같이 다양한 '나'의 시각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이 구조 자체가 어떻게 보면 원근법의 관점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개입니다", "나는 죽음이다", "내 이름은 빨강"처럼 인간이 아닌 동식물, 관념의 관점으로도 펼쳐 저서 이 부분은 세밀화가 갖고 있는 신의 시각이기도 하고요. 소설의 주제와 구조가 한 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이후의 세계

원근법 이후에 모든 미술이 그 방향대로만 흘러갔으면 원근법 입장에서야 해피 엔딩일 텐데, 그럴 리가 없죠.
기술이 발전하고 사진이 발명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영역은 사진에게로 넘어갑니다. 사진보다도 잘 그릴 수는 없으니… 결국 사진 보다 더 똑같이 그릴 거야!라고 기존 스타일을 고수한 화가는 도태되고 전통적인 회화 체계 대신, 찰나의 풍경/색/질감 등 우선시한 인상주의가 태동하게 됩니다. 전통이란 건 기술과 가치관의 발전에 따라 언제든 죽은 옛 것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거죠.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세밀화가의 최고의 경지는,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해서 그리다 보면 어느새 장님이 되는 것, 눈이 멀어서도 똑같이 그릴 수 있는 것, 이것을 곧 신의 대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요. 화원장 오스만은 술탄이 보관하고 있던 최고의 세밀화 작품을 보고 난 이후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눈을 멀게 합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던 서양 화풍에 맞서 자신이 온 생애를 바쳐온 세밀화에 대한 마지막 신념 같은 거겠죠.


tvn ‘윤스테이’에 3대 네팔 가족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힌두교 풍습을 엄격하게 지키고, 자식 세대는 종교의 가치관을 중시하면서도 식생활 등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윤여정은 이렇게 답합니다.


“알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이전에 있었던 것을 붙잡고 싶어 져요.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 지죠.”


저 말을 듣고 나이가 들수록, 업(業)에 종사한 시간이 길수록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가치관, 일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개인 삶에서는 개인의 책임으로 끝나기 때문에 괜찮지만 조직/사회와 같이 큰 테두리 안에서 과거의 방식만 고수하면 그 안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변화의 방향이 명확하고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그에 맞춰 신념의 방향을 수정하는 게 오히려 건강하고 발전적인 자세인 것 같아요.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긴 하죠.


(회사와 일 ver.)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

야마구치 슈, 구노스키 겐의 책 <일을 잘한다는 것>에 재미난 표현이 나오는 데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물리학의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이 적용된다고 해요. 젊을 때는 운동에너지로 힘차게 일하던 사람이 점점 직위가 올라가면 운동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바뀌면서 일의 동력이 줄어든다고요. 지금과 같은 격변의 시대에는 생존을 유지하는 ‘상태’를 목표로 하는 살아남기의 달인이 되지 말고, 살아남아 무엇을 하고 싶은지 ‘행동’으로 밝혀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위치 에너지가 꼭 부정적인 건 아닙니다. 그만큼 경험/연륜을 가지고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의사결정을 통해서 운동 에너지들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위치 에너지라는 게 직위/연차만 상관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패턴으로만 일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위치 에너지가 점점 커지고 있는 거 겠죠.

내가 일하는 방식이 죽은 옛 것이 되지 않도록,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여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도서>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일을 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 구노스키 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택근무가 좋긴 한데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