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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Dec 11. 2022

이스라엘 (9) - 베들레헴 점등식

03/12/2022_아랍 동네 이야기

이 날은 12월 된 지 며칠 안된 토요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샤밧 예배(토요일에 드리는 한국의 주일 예배 느낌. 여기 이스라엘은 금, 토요일이 주말이다)를 마치고 광고 시간에 담임 목사님께서 오늘 베들레헴 점등식을 한다고 같이 가는 것을 제안해주셨다. 너무나 솔깃한 제안..!


마침 이 날부터 카페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독일 공동체에서 관리해서인지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을 담은 것 같았다. 구석구석 자리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과하지 않은 '멋'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맛'을 확 풍기면서 설레게 하는 느낌. 카운터에도 독일식 크리스마스 빵 '슈톨렌'을 연상케 하는 빵들이 있었다. 모두 두 종류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둘 다 넉넉히 사주셔서 우린 운 좋게도 다 맛보았다. 하나는 계피향 나는 무화과 빵, 하나는 초코 빵.


계단이나 출입구 표시 옆, 책 서랍장 위 등 눈길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었다.
너무너무 맛있었던 초코빵
무화과 빵도 안에 견과류가 곳곳에 있어서 많이 먹게 됐다. 매력 넘치는 빵들.


사주신 다른 아랍 빵들과 함께, 또 카페 음료와 함께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남편과 같이 집에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실은 갈등 상황. 나는 과제를 미리 했었어야 됐다고 남편을 쪼았고, 남편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면서 서로 못하는 점들을 공격하게 되었다. 결국 화해하긴 했지만.. 나중에 기한 내에 과제를 제출해내는 남편을 보며 옆에서 불안해한 내가 미안해졌고, 사과했다.



가끔 보면 나는 엄마를 닮았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기분 나빴던' 혹은 '그렇게 안 해도 될'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별 거 아닌 일에 화난 것 같은 어조가 될 때도 있고, 본인은 괜찮은데 옆에서 불안해하기도 하고. 남편과의 갈등 상황에서 스스로의 행동을 발견하면, 갈등 자체도 날 힘들게 하지만 내가 싫어했던 행동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낀다. '왜 나는 이렇게 됐을까.' 이래서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은가 보다. 내가 겪은 조금의 경험으로나마 환자를 이해하고, 그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혹은 설명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의사로서 도와주고 싶어서.






어쨌든 남편은 평소의 다섯 배의 속도로 과제에 집중했고, 소문제 하나만을 남기고 베들레헴으로 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목사님께서 4시 45분에 우리를 픽업하러 와주셨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장관이었다.


역시 이스라엘은 하늘 맛집이다.


난 여태껏 베들레헴이 예루살렘에서 먼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바로 밑 동네였다. 구글맵으로 차로 30분 거리. 단지 아랍 동네여서 우리 같은 민간인은 가기 어려운 것뿐이었다. 차가 있지 않고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고, 아랍인들이 외부인에게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일이다. 또 동네 안에서 바깥으로 나갈 때에는 검문(?)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특별한 절차는 아니고, 가끔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저 창문 내리고 인사하는 정도인 듯하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은 정책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지 않고 체류허가증만 발급해주기 때문에 (유럽 여행 가기 딱 좋은 위치지만) 출국하려면 수백 달러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교육 측면에서도 비슷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히브리대 본대에 입학하면 아랍인들보다 유대인들이 훨씬 많은 걸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주로 다니는 동네는 유대인 동네다. 그 반대는 아랍 동네. 그중에서 우리가 저녁에도 산책할 수 있는 곳은 '와디 알 조지'(Wadi Al Joz) 정도다. 이곳은 유엔 직원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며 상점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다. 한편 외부인으로서 되도록 가지 말아야 할 지역도 있다. 그중 한 곳이 '잇사위야'(Issawiya)이다. 그곳에 3개월 정도 살았던 지인은 그곳에서 돌을 두 번이나 맞았다고 한다. 아랍 사회에서의 법이 있어 얼굴이나 몸통을 겨냥하지는 않지만, 발 쪽으로 던진 돌이 땅바닥을 맞고 튕겨 종아리를 스쳤는데 피가 났다고. 그런 동네는 보통 대중교통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만큼 국가로부터 방치된 곳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동네는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타서 들어가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할 정도다. 실제 아랍인들은 유대인 차량과 아랍 차량을 구별하며, 유대인 차량은 심한 경우 도난당하거나 돌을 맞을 수도 있다고 한다.



반면 아랍인들은 정이 많은 민족이기도 하다. 아랍 동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사탕이나 초콜릿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리고, 아랍 국제 고등학교를 나온 다른 지인은 아랍인들은 같은 편이 되면 끝까지 챙겨주고 위기의 순간에 함께 하는 의리의 민족이라고 말해줬다. 또 남편의 학교 친구 중 아랍인이 있는데, 그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가는 남편과 시누이의 짐 7-8개를 보관해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하나 비닐로 싸주는 정성을 들였었다. 그는 과제도 항상 성실하게 해서 남편에게 도움을 많이 준, 정말 좋은 친구다.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막상 친구로서 지내다 보면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의 복잡한 상황이 안타깝다.






다행히 막히지 않고 점등식 예상 시간 (오후 6시 30분) 전까지 도착했다. 공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트리가 있는 곳까지 10-15분 정도 걸어 올라간 것 같다. 주변엔 팔라펠 식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광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6시 10분 정도였다. 그렇게 10분, 15분 기다리는데 자꾸 연주며 행진이며 순서는 진행되지만 점등식을 언제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산타 모자를 쓴 사람들이며, 풍선 든 아이며 좋아 보이는 풍경들이 보였지만 점차 지루해졌다. 우리는 점점 배고픔만 느낄 뿐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십자가.
여기가 앞쪽.
행진 중. 저 행진이 끝나면 점등식을 시작할 줄 알았다..
아랍 동네 팔라펠은 유대 동네보다 더 싸다.


결국 기다리는 시간이 40-50분에 다다르게 되었고, 우리는 지쳐서 끝말잇기로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목사님께서 복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냥 저녁 먹으러 가자고. 6시 30분에 시작될 줄 알았던 점등식이 7시가 되어도 안 하고 있다니. 우린 기쁘게 포기하고 KFC를 갔다.






우리 인원 9명에 목사님이 닭 세 마리 넘게 시켜주셨다. 저 멀리 노란색은 밥..!


오랜만에 푸짐한 치킨이었다. 여기 이스라엘의 양념치킨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튀김 겉은 후라이드와 차이가 없다. 그저 튀김 속 살에 약간 매콤한 가루가 한 겹 뿌려진 느낌? 절대 소스가 바깥에 묻혀있지 않다. 그렇지만 정말 맛있었다. 제대로 된 후라이드를 먹는 느낌. 개인적으로 속에 안 맞아 튀긴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때만은 맛있게 먹었다. 패밀리 세트(양념 반 후라이드 반에 빵, 감튀, 코울슬로, 음료 등 모두 포함된 세트) 2개에 밥도 추가해서 시켜주셨다. 우리가 잘 먹으니 더 먹으라고 닭 한 마리를 더 사주셨다. 감동. 여기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서, 불 켜진 트리 보러 가자 하며 다 같이 아까 그 장소로 걸어갔다.






이게 웬 걸. 충격적 이게도 한 시간쯤 지난 시간인데 아직도 트리에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우린 6시쯤 도착해서 이제 2시간이 더 지났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행사를 어떻게 진행하는 건지. 예정 시간도 없이 이렇게 사람 서있게 해도 되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지 좀 더 기다릴지를 의논하고 있는데 누군가 주변에 있던 팔라펠 식당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니 '5분 후에 켜진다'라고 했단다.



지금껏 거의 1시간 넘게 기다린 건데..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좀 더 서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5분쯤 후에 점등식이 시작되었다. 트리와 그 위를 드리운 조명에 불이 켜지고 폭죽이 장난 아니게 터졌다. 이 점등식에 돈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폭죽 시리즈였다. 휘황찬란한 점등식은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20년 이상 예루살렘에 살았던 지인도 처음 본 점등식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이 광경을 본 건 정말 대단한 거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아무도 안내받지 못한 점등식 시간을 근처 가게 아저씨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역시 지혜 또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인가.


사람들은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랍인들 같았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몰린 수많은 사람들


화려했던 볼거리가 끝나고 우린 지나는 길에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면서 쉰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베들레헴을 나갈 때는 들어올 때보다 훨씬 막혔다. 들어오는 데는 1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면 베들레헴에서 나가는 데만 1시간 정도 걸린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가는 문에서 차량 검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앞서 가던 차량이 뭔가 걸려서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 뒤의 모든 차량들은 기다려야 했다.



아마 운전하신 목사님은 피곤하셨을 것이다. 차가 제대로 나가질 못하고 있으니. 나는 뒤에서 웹툰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집에 오니 그렇게 오래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베들레헴에서 9시 정도에 출발해 10시 30분 이내에 온 것 같다. 남편은 집에 돌아가 나머지 소문제 하나를 넉넉히 풀고 과제를 마무리했다.



무사히 과제를 끝낸 남편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어떻게든 해내는 책임감과 이번 한 학기를 무사히 마쳐서 우리의 커리어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의지. 한편 베들레헴 점등식은 정말 화려했다.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을 본 건 매우 감사한 일이다.


오늘 하루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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