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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mengs Dec 11. 2022

이스라엘 (10) - 음식 장인들

내 주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여기 이스라엘에 마주치는 한인들은 대부분 유학생들이다. 자리를 지키는 분들은 목회자분들. 시즌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인 유학생들은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난 유학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용돈 내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야기는 여럿에게서 들었다. 우리 부부는 용돈은 받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시댁에서 집세와 전기/수도세를 지원해주고 계신다. 생활비는 이미 한국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수입이 없으니 되도록 아껴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난 평소에도 아껴 생활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고 남편은 나만큼은 그러지 않기에 갈등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팍팍한 유학 생활에서 가끔 재료를 아낌없이 투자한 훌륭한 '메뉴'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여기 생활을 해온 지 불과 한 달 반 정도 되었는데 내 주변에는 두 명 정도의 요리 장인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맛있게 될 거다'라고 예상해서 하나하나 공든 탑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



1. 일본식과 중국식

맨 왼쪽이 일본식 전분으로 튀김옷을 한 '파르기욧(닭 허벅지살) 탕수육'. 허니버터맛을 정말 버터와 꿀로 재현했다.
샐러드 드레싱을 올리브유, 다진 마늘, 파마산 치즈, 소금 등으로 따로 만들었다. 정성 가득한 요리에 감동.
수저와 동그랗게 만든 밥, 그것들을 받치는 테이블웨어까지도 완벽.

이 날 나와 남편은 소문으로만 듣던 '요리 잘한다'는 명성을 눈과 입으로 확인했다. 2-3시간쯤 같이 있었는데 정말 행복하게 잘 먹고 나온 날이었다. 모든 요리를 클리어했는데 심지어 샐러드도 맛있게 먹었다.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이 날 정말 핫했던 음식은 허니버터 탕수육.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음식이다. 깔끔한 비주얼과 맛과 향 모두를 사로잡은 달콤한 소스가 대박이었다. 강요하는 것처럼 달기만 한 소스가 아니라 뭔가 품위를 갖춘 감미로운 느낌? 한국인 입맛에 맞춰 꿀을 더 넣었다고 한다. 먼저 버터에 재료를 볶다가 나중에 꿀을 첨가했다고 하는데 어쩜 이렇게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자작하게 베인 소스와 씹었을 때 알캉하게 씹히는 닭 허벅다리 살(파르기욧 ; Pargiot, 여기 이스라엘에서는 닭 부위 중 가장 선호하는 부위. 따라서 비싼 편이다)의 식감의 조화가 훌륭했다. 평소 튀김옷을 정말 안 좋아하는 나인데도 이 음식은 맛있게 먹고 나왔다. 일본식 전분으로 튀겨서인지 튀김옷과 고기가 분리되지 않고 전체가 너겟처럼 동그랗게 감싸지는 게 보기도 좋았다.



나머지 음식들도 정말 좋았다. 또 그릇이 그 안에 담긴 음식 느낌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것 같아서 감탄했다. '흰 그릇이 정석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그릇 하나하나가 예쁜 무늬가 있어도 참 좋을 수 있구나.' 새롭게 배웠다.



음식은 네 종류 모두 치즈 또는 고기가 있어서 우리의 허기진 배를 넉넉히 채워주었고, 정말 잘 대접해주는 게 느껴져서 고마웠다. 샐러드는 소스에 파마산 치즈가 있었고 밥그릇과 샐러드 그릇이 따로 나왔다. 모두 새로웠던. 식기와 요리 모두에 진심이 느껴졌다. 음식을 설명하자면, 사진에서 두 번째 음식은 토마토 계란 요리로 굴소스 베이스이며, 치즈를 듬뿍 뿌려주었다. 푸른 테두리 접시 안에 담긴 요리는 소고기와 양배추로 한 음식인데 중국식 요리라고 한다. 소고기는 살코기만 절편처럼 네모나게 잘려있고 양배추도 잘게 썰어져 있어 먹기도 좋고 건강에도 좋을 듯한 요리였다. 모두 내 취향. 이렇게 대접받고 나니 내가 이전에 대접해 준 사람들에게 좀 미안해졌다.. 아 초대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2. 양식


올리브유에 마늘을 30분 이상 조린 '갈릭 콩피 파스타'

이 날은 이런 만찬을 먹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날이었다. 우리는 고기가 손님 초대용 밖에 안 남은 보릿고개 상황이어서 교회 차원에서 간 KFC가 한 주의 유일한 육식이었고 거의 며칠 째 피타빵(pita bread)에 후무스와 기타 소스만 발라 먹고 있었다. 나는 약속이 좀 있어서 이틀 정도는 디저트를 먹고 다녔지만 남편은 학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빵으로 때우는 며칠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 날 만큼은 햄버거를 먹고 싶다길래 안쓰러운 마음에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보릿고개가 생긴 이유는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대량으로 고기를 사놓고 그다음 한 달이 될 때까지 먹기 때문이다. 대량으로 구매해 놓으면 너무 자주 먹게 돼 전체 소비가 커질까 봐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해보니 필요할 때마다 근처 마트에서 고기를 사는 것보다 한 달 소비가 덜 나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달도 정해진 날짜에 고기를 주문하려고 최대한 버티고 있었던 것. 대량 구매를 하는 온라인 마켓은 'baladi'라는 곳이다. 


출처 : https://www.baladisupermarket.com/


아무 정보가 없던 첫 달에는 기숙사 근처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샀는데 (기숙사 근처에 있는 유일한 슈퍼마켓이어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곳에서 필요한 식료품을 산다) 닭가슴살 1kg에 50-65 세켈 (약 20000-26000원)이니 너무 비싼 느낌이라 자주 사지는 못했다. 소고기라도 1kg에 할인해서 70-90 세켈 (약 28000-36000원)이었다. 그냥 모든 고기가 비싼 것. 소고기는 가끔 너무 고기가 먹고 싶을 때 사게 되었다. 보통은 사서 굴라쉬를 해 먹는다. 집에 있는 조리용기가 냄비 하나와 프라이팬 하나인데 프라이팬은 너무 작아 주로 냄비에 요리를 하다 보니 탄생한 우리의 국물 시리즈 중 하나다. 국물 요리를 하면 튀기거나 볶은 것보다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음 날 아침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일타쌍피.



어쨌든 교회 집사님께 'baladi'라는 온라인 슈퍼마켓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중보다 훨씬 싸고 질도 좋다고 하셔서 시험 삼아 고기와 쌀 등 필요한 것들을 사게 되었다. 실제로 이곳 고기가 시중보다 10-20 세켈은 더 쌌다. 그런데 약간의 장벽이 있다면 여기는 무료 배송이 되려면 400 세켈 (약 16만원) 이상을 사야 한다는 것. 오프라인 매장으로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는 시간과 교통비, 그리고 산 물건을 옮기는 것까지 고려하면 무료배송이 가장 좋았다. 해서 한 달 치를 구매하게 된 것이다. 






너무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지만 결론은 빠듯한 생활을 하는 한 주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소원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갔는데, 전화가 왔다. 요리 장인에게서. 

'오늘 누구 생일이라 음식 하는데 이따 8시쯤 올래?'

'넹'


그래도 남편 일주일 소원이 햄버거였던 만큼 두 개 시킬 걸 하나만 주문해서 먹기로 했다. 참고로 이스라엘 햄버거는 패티가 맛있다. 다른 나라처럼 공장제 패티가 아니다. 여긴 돼지고기 패티는 안 쓰기에 모두 수제 소고기 패티다. 


패티. 토마토. 상추. 양파와 선택한 소스 세 종류 (소스는 무료).

학생 할인 10%를 받아 35 세켈 (약 14,000원)에 산 햄버거는 보기에는 귀엽지만 정말 맛있었다. 패티에 진심인 사람은 꼭 이스라엘 햄버거를 먹어봐야 한다. 이곳 패티는 고기가 살아 숨 쉬는 패티라고나 할까.





어쨌든 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8시 넘어서 초대받은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게 뭐지?


이 도마는 키보드 가로축 정도 되는 큰 나무 도마다.. 여기에 가득 고기를 올려놓다니..!
빵은 팬에서 계속 저온 가열하여 바삭하게 만든 것. 오른쪽은 깻잎�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 담긴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교회 청년부 중 한 명. 평소 운동과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자타공인 '헬스 전도사'였다. 그가 오늘 생일이기에 같은 교회 형이 3시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음식을 마련한 것. 그 형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giver 인 분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면서 기뻐하는 분. 


음식을 보면서 그저 존경과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서 이 날은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한 번 살이 빠진 이후로 적당히 배가 차면 그만두는데, 오늘의 만찬은 절대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만든 이의 손길과 음식 하나하나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보이는데, 그리고 정말 맛있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었을까. 




예를 들어 고기는 연육 작용을 위해 화이트 와인에 몇 시간 담가 두었다 한다. 고기 옆 빨간 소스(?)는 버터에 파프리카 가루를 넣은 것. 부드럽게 숙성된 고기는 기름을 팔팔 끓인 팬에 살짝 넣었다 빼어 속은 미디움-레어로 겉은 보기 좋은 그릴 느낌으로 구워져 있었다. 신기하게 속이 빨간데도 전혀 비리거나 육즙이 나오지 않고 담백했다. 최고의 스테이크였다. 


고기를 부드럽게 해 준 화이트 와인. 오른쪽은 발사믹 소스.

감자는 또 어떻고. 이게 정말 별미였다. 파마산 치즈를 뿌려 비주얼을 업그레이드 한 감자는 진짜 먹을수록 계속 들어가는 '마약 감자'였다.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니, 먼저 감자를 물에 삶고 이후에 에어 프라이기에 넣었다고 한다. 넣기 전에 고깃기름으로 기름칠을 했다고. 이 분도 정말 요리에 진심인 분. 우리 교회 청년부 중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동생의 생일상을 마련해 준 그 형이 참 대단해 보였다.



이 날 맛있는 한 끼는 어딜 가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고마움을 잘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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