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을 찾아서-감식초

by 여송

벌써 따스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건너편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서 있는 활엽수들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가지만 남았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빨간 열매가 보인다. 그건 수확 철을 한참 넘긴 감이었다. 어떤 감나무는 산기슭에서 야생으로, 또 다른 나무는 주인 잃은 폐가 옆에서 농익은 감을 여태껏 달고 있다. 까치 한 마리가 감나무 꼭대기에 앉아 홍시가 된 감으로 늦은 점심을 들고 있다.

요즘에는 산이나 들에서 자생하는 감조차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이 과일도 귀했다. 삶이 팍팍한 농촌에서는 돈이 될 만한 농산물은 모조리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기에, 감나무를 경작하는 농부들조차 변변한 감 한쪽 먹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네 시골집 앞마당에도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전해 들은 그 나무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수령이 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시골집 지붕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그 감나무는 20여 년 전쯤, 낡은 집을 헐고 새 집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베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낌없이 내어준 열매로 어려운 농촌 가계에 보탬을 주기도 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수시로 나무 위로 오르내리는 우리에게 온갖 추억을 선사했던 그 감나무는 불행히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시골집 감나무의 감을 따는 날은 그야말로 잔칫날이었다. 나무 위에서 감을 따다가 잘 익은 홍시라도 발견하면 아버지 몰래 입 속으로 가져가곤 했다. 우편배달부나 이웃 사람들이 운 좋게도 감 수확하는 날 우리 집을 방문하면, 이날만은 달콤하게 익은 홍시를 몇 개씩 건네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수확한, 천 개가 넘는 감을 커다란 나무 궤짝에 넣은 후 뚜껑에 못질을 함으로써 우리의 접근을 냉정히 차단하셨다.

대부분의 농산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도 수확하고 나면 깨어지거나 기형인 일명 '파지'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 파지 감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버림받은 이 감들을 모아 꼭지를 따고 깨끗이 씻어 말린 후 감식초를 담그셨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식초는 머위나 죽순나물 등의 나물류나 생선회의 초장 등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요긴한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식초 중에서 감식초가 맛과 건강상 측면에서 으뜸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감식초는 다른 식초와는 달리 감칠맛이 강하며, 감에 풍부한 비타민이나 구연산이 많이 들어 있어 몸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감식초를 맛본 지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 맛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저 산기슭의 감으로 식초를 만들어서 추억 속에 잠재해 있는 어머니의 손맛을 다시 맛보고자 한다. 감나무의 높은 부위에 위치해 있는 감을 따려면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소위 '감작대기'는 대나무 끝부분을 세로로 쪼개어 만든다. 쪼개진 틈으로 감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밀어 넣은 다음, 감작대기를 돌려주면 가지가 부러져도 대나무 틈새에 끼어있기 때문에 감이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수확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손에는 대나무 장대를, 다른 손에는 감을 담을 종이 백을 들고 감나무가 자생하는 산기슭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곳곳에 자리한 가시덩굴들이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처럼 내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간신히 오르는데 이번에는 바로 코앞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산골짜기의 정적을 깨는 소리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간이 떨어질 뻔했다. 몸에 좋다는 감식초를 만들려다 아예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나운 짐승을 길들이기는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받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채울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채울 수 없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감나무 아래에 도착하니 차가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곧바로 대나무 장대를 이용하여 낮은 부위의 감을 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감은 이미 물렁물렁한 홍시가 된 상태였다. 이런 감은 쉽게 터지기 때문에 수확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감나무의 꼭대기에 위치해서 장대가 미치지 못하는 감을 따기 위해서 감나무를 타고 올라야 한다. 어렸을 적 시골집 감나무를 오를 때의 그 날렵하고 민첩한 동작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감나무 가지를 잡고 한참을 바동거린 후에야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살을 빼고 근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뿐, 속세로 내려가면 다시 주지육림(酒池肉林)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몇 개의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채, 감나무에서 내려와서 수확한 감을 종이 백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감의 양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아 종이 백이 가득 찼다. 그 백을 신줏단지 모시듯 가슴에 안고 발걸음도 가볍게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수확한 감을 깨끗이 씻은 다음 햇볕에 말렸다. 장독대에서 할 일없이 빈둥거리고 있던 항아리 하나를 가지고 나와 역시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 하나 없이 말렸다. 두어 시간 후, 마른 감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은 다음 항아리 입구를 비닐로 덮고 노끈으로 꽁꽁 묶어 밀봉시켰다. 완성된 항아리는 집 앞 양지바른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자연과 시간이 화학적 반응에 개입할 것이다. 햇빛에 의해 따뜻해진 감은 자신이 품고 있던 탄수화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분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그다음에는 공기 중의 초산균이 작용하여 당분을 식초로 산화시킬 것이다. 이는 수천 년, 아니 수억 년 동안 면면이 이어 내려온 자연의 법칙이다.


항아리 속에서 잠자고 있는 저 감은 특히 야생에서 자란 자연산 감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자라난 히스클리프처럼, 황량하고 거친 자연 속에서 가뭄과 병충해 등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맺은 결실 속에는 노화를 억제하고 생명을 연장해 주는 강력한 항산화물질이 존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공적으로 재배한 장뇌삼이나 인삼보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라난 산삼이 몸에 좋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는 '산나물은 세상 사람들의 가꿈을 받지 않고, 들새는 인간의 먹이를 받아먹지 않건만 그 맛이 모두 향기롭고도 맑다'라고 한 채근담(菜根譚)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내년 이맘때면 항아리 속의 감은 발효가 되어 투명하면서도 신맛을 띤 식초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 식초를 맛볼 때마다 뇌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맛을 불러내리라. 감이 가지고 있는 몸에 좋은 성분들과 자연이 빚어낸 유익한 물질들도 덤으로 얻을 것이다. 내 마음은 벌써 내년 이맘때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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