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물러나면서 한낮 기온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 습도마저 높은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계절은 여름의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요즘이야 시골집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 웬만한 더위에도 견딜 수 있지만, 인력에 의존하는 부채가 유일한 냉방 기기였던 옛날에는 무더운 여름을 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여름철이면 제일 인기를 끄는 장소는 느티나무 아래였다. 중년 여성의 파마머리처럼 풍성한 느티나무는 그 어떤 곳보다도 시원하고 쾌적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뙤약볕이 피부를 찌르는 한낮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곳으로 모여든다. 나무 그늘의 한쪽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코끼리 허벅지만 한 느티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낮잠을 청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장정 네댓 명이 모여 장기판을 벌이고 있다. 옆에서 훈수 두던 구경꾼이 그렇게 두면 어떡하느냐고 고함을 치자 나무 위의 매미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까까머리 아이들은 이 매미를 잡겠다고 아름드리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잡은 매미는 곤충채집이라는 여름방학숙제에 요긴한 재료로 쓰인다. 한여름의 느티나무는 후덕(厚德)한 종손 집 맏며느리처럼 이들 모두를 품어 안는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수로서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에 주로 분포한다. 이 나무는 벚나무나 목련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사과나무나 배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다. 꽃은 작고 볼품이 없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꽃이 피었는지도 모른다. 열매 역시 작고 거무튀튀하며 별다른 맛도 없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루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자라는 나무인데 반해, 느티나무는 잔가지를 늘어뜨려 옆으로 자란다. 김훈은 숲 속의 나무들 중에서 느티나무가 가장 완강한 착지성(着地性)을 보인다고 하였다.(자전거 여행, 2014). 이런 점에서 느티나무는 겸손의 미덕을 지녔다. 여러 갈래로 자라난 느티나무 가지 곳곳에는 까치가 둥지를 틀고 비둘기가 휴식을 취한다. 이 나무는 또한 관용과 포용의 나무다.
느티나무는 또한 수명이 길기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에 자생하면서 수령이 길어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은 대부분 느티나무다. 이들의 나이는 4~5백 년은 보통이고 천년 가까이 되는 나무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치면 이들은 고려 초기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오고 있는 셈이다. 고작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인간들에게 마음을 비우면서 살아가라고 훈계를 하는 듯하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이들은 대부분 마을 입구에 서서 마을의 이정표 역할도 하고 있다. 역사가 어느 정도 되는 시골 동네에서는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 정도는 볼 수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신령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옛사람들은 느티나무를 서낭신으로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곤 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세상살이가 고달플 때에는 이 느티나무에 새끼줄이나 형형색색의 천을 두르고 가족의 무사안일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이 느티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지주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단오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느티나무는 또 한 번 변신을 한다. 이른바 그네대회라는 축제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마을 청년들은 느티나무의 가지에 굵은 새끼줄을 매어 그네를 만든다. 이 대회는 여성들의 무대이다. 젊은 처녀들은 기다란 치마를 펄럭이며 힘차게 그네를 밟아, 그네를 맨 나뭇가지보다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종을 울린다. 종의 위치가 높아질수록 구경꾼들의 박수소리가 커진다. 가난과 고난이 다채롭게 직조(織造)된 삶 속에서 이날만은 여성들이 해방되던 날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에도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4백 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이젠 더 이상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 것 같다. 느티나무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마을 입구에 서서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벌려 감싸야할 정도로 굵게 자란 밑동은 나무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밑동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가지들은 위로 자라면서 또다시 잔가지를 만들었고, 가지마다 무수히 많은 잎을 달고 있다. 세월의 연륜이 켜켜이 쌓인 나무껍질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고, 껍질 사이로 검푸른 이끼가 끼여 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게 자란 이 느티나무 역시 넓은 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나무 옆에는 둥그렇게 생긴 커다란 돌이 예전 모습 그대로 떡 버티고 서 있다. 이 돌 역시 우리 조상들이 마을이나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이른바 선돌(立石, menhir)이다.
느티나무의 검푸른 잎들은 나무 아래로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시원한 나무 아래에는 이젠 더 이상 모시적삼 차림의 촌로나 까까머리의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에는 백구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더위를 식히고 있을 뿐이다. 무더운 날씨지만 느티나무 그늘이 제공하는 청량감 때문인지 견공의 표정이 밝은 것 같다.
한여름의 긴 해도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우리의 인생 역시 쉼 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고향의 느티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고향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