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바로 뒤편에는 기차가 다니던 철로가 있었다. 거의 백 년 동안, 이 철길을 통해 사람들이 왕래하고 물자가 이동하여 왔다. 몇 년 전, 뱀 기어 다니듯 구불구불한 선로를 직선화하는 공사를 하면서 철로는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기차가 집 뒤를 지나갈 때마다 귀를 자극하던 날카로운 쇳소리와 요란한 경적소리는 간 곳 없지만, 증기기관차로부터 디젤기관차로 이르는 추억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폐선된 철도의 레일이 걷히고 그 자리에는 말끔히 포장된 자전거 도로가 생겼다. 육중하고 거무튀튀한 기차 대신 이젠 은백색의 날렵한 자전거들이 이 길을 질주한다. 자전거의 방울소리가 맑고 낭랑하게 들려온다. 자전거 도로 한 편에는 별도로 한 개의 차선을 만들어 보행자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도 꾸며 놓았다.
도시 생활에 심신이 피곤해지거나 농촌생활에서 여유가 있을 때 나는 이 산책로를 종종 이용한다. 울퉁불퉁한 등산로와는 달리, 곧고 평탄하게 뻗은 이 길을 걸을 때에는 발밑의 장애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길에서는 시선을 아래로 향할 필요가 없으니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점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든다. 산책로 주변에 자생하는 뽕나무 가지에는 검붉게 익은 오디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나뭇가지에 앉아 맛있는 과일을 독차지하던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든다. 자신의 식사를 방해하는 존재를 아니꼬운 듯이 쳐다보는 눈초리가 약간은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생존의 법칙에 따라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새의 자리를 꿰찬 후, 나도 잘 익은 오디 몇 개를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달콤하고 향긋한 맛이 혀와 코에 스민다. 이 맛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자연 그대로의 맛이다. 오디 열매에서 배어 나온 과즙으로 손과 입술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산책로 아래 깊은 계곡에 컨테이너 하우스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들어 농촌 곳곳마다 이런 이동식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 옛날, 가난을 견디지 못해 농촌을 등진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고향으로 회귀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완전한 귀농, 귀촌이 어려운 실향민들이 간이주택을 마련해 놓고 틈틈이 이곳에 들러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자그마한 개울가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생긴 지가 제법 오래된 것 같다. 한여름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집 주위에 심어 놓은 등나무는 무성히 자라 컨테이너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정면에 나 있는 출입문이 아니면 여기에 컨테이너 하우스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등나무가 컨테이너를 뒤덮은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가 등나무의 덩굴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다.
집 뒤편의 매화나무도 크게 자라났고 가지마다 수확을 포기한 매실들이 기울어가는 여름 햇살을 받아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집 입구에는 자동차 시트를 개조한 소파 한 세트가 쓸쓸히 자리 잡고 앉아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출입문 왼쪽에는 야외 바비큐용 그릴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산속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거울이 하나 걸려 있다.
이 집 주인도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품고 도회지로 향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며 청춘을 바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의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고, 얼굴의 주름살은 더 깊게 파였을 것이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이곳에 그만의 안식처를 짓고, 도시 생활에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 왔는지 모른다. 그는 또한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출입문 입구의 거울에 점차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면서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한탄했으리라.
화분에서 자란 꽃은 생기가 없고, 새장 속에서 갇혀 사는 새는 천연(天然)의 맛이 없다는 말이 있다. 개울가 절벽에는 자주 빛 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화려한 꽃잎에 점점이 박힌 검은 반점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집 앞에 위치한 산 위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여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보아주는 사람 없고 들어주는 이 아무도 없지만, 이들은 자연 속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우리 인간도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갈 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의해 뜨겁게 달구어진 대기는 계곡 위의 하늘로 솟아올라 하얀 뭉게구름을 만들었다. 우리의 인생 역시 잠시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한 조각의 구름이 아니던가. 카프카(F. Kafka)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소중한 것은 그 삶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고난과 시련이 난무하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영욕이나 번뇌가 있을 수 없다. 부디 이 집의 주인도 이곳 인생의 안식처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고, 노쇠해진 육체도 잘 추슬러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