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방문한 고향 농촌은 봄 농사로 분주하다. 마을 주변의 들밭에서는 촌로들이 땅을 갈아 감자와 상추를 심고 있다. 저 멀리 산기슭의 자갈밭에도 농부들이 농작물을 파종하느라 개미처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둥지를 짓기 위해 열심히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는 까치들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골집 앞마당에서 일렬로 도열해 있는 대파의 끝에는 하얀 꽃봉오리가 맺혔다. 혹한의 겨울을 맨몸으로 오롯이 이겨낸 끝에 얻은 결실이다. 담장 밑의 복숭아꽃은 이미 다 떨어졌고, 그 자리에는 콩알만 한 열매가 맺혔다. 담장 위로 살금살금 기어가던 고양이가 인기척에 놀라 냅다 도망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텃밭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직 작물을 파종하지 않은 빈 밭에 잡초가 어느 정도 자라났는지가 주된 관심사이다. 몇 주 전에 잡초를 깨끗이 제거해 놓은 탓에 다행히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잡초는 싹이 돋아나자마자 괭이나 호미로 긁어주면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쳐버린 후, 웃자란 잡초를 제거하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잡초제거작업을 간단히 끝낸 후, 밭 가장자리에 호박과 옥수수를 심었다. 먹을 만큼만 심기 때문에 호박은 두 포기, 옥수수는 50여 포기로 족하다. 농작물을 너무 많이 심어 발생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자초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우리네 텃밭과는 달리, 이웃집 앞에 펼쳐져 있는 밭에는 온갖 잡초들이 자라나고 있다. 곳곳에 솟아난 광대나물은 봄을 맞아 붉은색 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그 옛날 배고플 적,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이 식물은 꽃잎이 코딱지같이 생겼다고 하여 코딱지 나물로 불리었다. 길쭉하게 자라난 냉이 줄기의 꼭대기에 매달린 하얀 냉이꽃이 봄바람에 춤추듯 하늘거린다.
작년 가을, 이 밭의 주인인 옆집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심었던 시금치와 유채는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잡초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주인 노릇을 하는 잡초들에게 주거공간을 빼앗겨 연약하게 웃자란 시금치는 수확시기를 놓쳐 꽃대가 올라왔다. 온갖 잡풀들 속에서 피어난 노란 색깔의 유채꽃은 더 이상 농작물이 아닌 야생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년과는 달리,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 작물들은 잡초들 틈바구니 속에서 몹시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또한 투우장의 소처럼, 기세 등등한 잡풀들의 온갖 멸시와 학대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집 앞의 밭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갖가지 농작물을 심던 이웃집 할머니는 불행히도 지난가을, 밭일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다친 뼈에 철심을 박는 등 4개월에 걸친 치료를 받은 후에야 그녀는 겨우 걸음걸이를 뗄 수 있었다. 하지만 8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노쇠해진 데다가 부상까지 겹친 할머니에게 농사일은 이젠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가끔 2층 집 계단을 힘겹게 내려와 황폐해진 밭을 둘러보며 안타까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할머니의 다부진 호미질에 뿌리째 뽑혔던 광대나물, 냉이, 둑새풀, 개망초들이 쇠약해진 할머니 앞에서 약 올리듯 의기양양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금년에도 이 비옥한 텃밭에서 알찬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할머니의 기대감은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조각난 기대감을 다시 주워 모으는 것은 이젠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글퍼지는 것 중의 하나는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에든 도전이 가능한 젊음이 좋다고 하는가 보다. 할머니는 이젠 농사일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된 것이다.
오늘도 할머니는 2층 베란다에 앉아서 잡초들로 가득 찬 텃밭을 내려다보며 한숨짓고 있다. 할머니의 축 처진 어깨너머로 길어진 봄날의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다.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할머니의 심정을 대변하듯 서럽게 다가온다. 저물어가는 해는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든 할머니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