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귀향

by 여송

고향마을에서 서쪽으로 산 2개를 넘어가면 외딴집 한 채가 나타난다.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에 위치한 이 집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집 입구에는 주인 잃은 배나무들이 풀이 죽은 듯 양쪽으로 도열해 있고, 그 위로 잡풀들이 타고 올라가 말라죽어 있다. 집 앞에 우뚝 선 전봇대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간 덩굴식물들은 차가운 북풍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다. 얼기설기 지은 통나무집의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통나무 사이로 보이는 집 안에는 주인이 사용하던 가재도구와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벽에 걸린 그의 작업복 위로는 거미줄이 처져 있어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한다. 집 옆에는 농사일로 지친 집주인이 휴식을 취하거나, 산중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원두막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다.

이 통나무집 주인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또 다른 외딴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20대 후반부터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었다. 그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은 장손인 조카가 상속하였으나, 조카는 그 집을 곧 팔아버리고 도시로 이주했다. 세월이 흘러 그 공무원도 서울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정년 후 그는 홀로 이곳으로 내려와 주위의 산을 개간하여 과수원을 일구고, 거기에 배나무와 감나무를 심었다. 20여 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과일나무를 가족 삼고,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해 왔다. 그러던 그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게 되었고, 7~8년 전쯤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는 왜 화려하고 편리한 서울생활을 마다하고 처자식마저 이별한 채, 이곳 외딴집에서의 외롭고 쓸쓸한 삶을 선택했을까? 그에게는 이곳 고향의 산천이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포근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봄이면 꽃피고, 여름이면 대지가 초록으로 물들고, 가을이면 과일들이 익어가고, 겨울이 오면 산새 소리 들리는 이곳이 그에게는 낙원이었기에 그랬으리라.


폐가가 되어가는 통나무 집 앞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날 때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서울로 향하던 길은, 이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그에게는 황천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통나무집을 뒤로한 채, 과수원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사정없이 양쪽 뺨을 때린다. 집주인이 과수원 주변에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측백나무는 하늘을 찌르려는 듯이 높게 자라났다. 상록수인 측백나무의 푸른 잎이 삭막한 겨울 대지에 그나마 약간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에 과수원 주인이 심어 놓았던 감나무들도 제법 크게 자랐다. 한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쓸쓸히 서 있는 감나무마다 수확을 포기한 검붉은 색의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얼고 녹기를 반복한 감이 마치 비닐봉지에 싼 고추장처럼 축 처진 채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작년에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과일값이 괜찮았는데도 수확할 사람이 없어 감들이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른 지 20여 분 후, 과수원 위쪽의 산마루에 도착했다. 주위에 깔린 황톳빛의 고운 흙이 차가운 겨울 날씨에 다소나마 온기를 느끼게 한다. 산 정상에는 최근에 조성된 무덤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무덤 앞의 제단에는 조금 전 지나왔던 통나무집 주인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서울로 돌아갔던 그가 며칠 전 말없이 귀향한 것이다. 쌍분(雙墳)으로 조성된 두 무덤의 왼쪽 편에는 조화 바구니가 덩그렇게 놓여 있고, 그 뒤로 과일 몇 쪽이 담긴 플라스틱 접시가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아직 서울에 생존해 있는 그의 부인을 위한 가묘(假墓)가 위치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제단 아래쪽에 미리 새겨놓은 그녀의 이름은 하얀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



이제 그는 양지바른 이곳에서 그가 가꾸어왔던 농장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누워 있다. 그는 더 이상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찾아갈 필요도 없이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그동안 심고 가꾸어 왔던 배나무와 감나무들을 바라보며 애정 어린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또한 그가 살아온 통나무집을 내려다보며 행복했던 이곳 생활에 대한 감회에 젖어 있다.


산 정상 위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가느다란 겨울 햇살이 소나무 사이를 통해 무덤 위로 내리쬔다. 주역(周易)에 의하면 하늘(乾)은 아버지요, 땅(坤)은 어머니다. 그는 이제 하늘을 이불 삼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따뜻하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것이다.


저 멀리 지리산 정상에 하얀 구름이 걸려 있다. 서산대사는 인간의 삶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 별안간 한겨울의 삭풍이 휘몰아치더니 무덤가의 황토가 바람에 휘날린다. 우리의 인생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지는 한 줄기 바람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인생길이 그가 살아온 길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에 산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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