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마리 정리법 옷 정리
아들을 원했는데 또 딸이 나온 나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는 삼남매 중의 중간이다. 돌 사진을 보면 바가지 머리에 남자아이 한복을 입고 있다.
남들은 가운데라서 이리저리 치였겠어요 라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어릴 적 기억이 많지 않은 탓일지, 집에서는 호랑이였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이라 서러웠던 기억은 특별히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드라마 응답하라’의 둘째 덕선이를 보며 짠한 마음이 드는건 슬픈 기억은 잊힌 듯하다.
오히려 좋았던 기억은 가족들의 옷을 다양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언니의 옷과 가방, 신발 등의 모든 물건들을 비공개적으로도 공유했고 많이도 혼났다. 티 안 나게 되돌려 놓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리고 캐주얼하게 입고 싶으면 남동생 옷을 빌려 입고 레이어드 할 아빠, 엄마의 스카프나 조끼를 입는 등, 옷 입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별나게 다양한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에 나만의 스타일은 없었다. 입을 것들이 다 갖춰진 집이었기에, 내 돈을 주고 옷을 사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일본에서 혼자 살게 되었을 때는 갖고 있는 옷만 입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아르바이트했던 한정식집에서 일본인 직원 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라며 옷을 몇 벌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언니 옷 물려 입는 것이 익숙했기에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옷을 못 입고 다녔었나...? 싶네…
나이를 훌쩍 먹고 보니, 이제 나의 체형도 잘 알게 됐다. 나에게 맞는 디자인과 심플함으로 ‘내 스타일’이란 것이 생겼다.
스타일은 생겼는데 내 옷장 속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의 곤도 마리에 (Kondo Marie)의 정리 컨설턴트 양성과정의 수강 조건은 곤마리 정리법으로 자신의 정리를 끝냈다는 것을 인증해야 한다.
이미 옷 정리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정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곤마리 책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모두 꺼내기
이 과정은 정리 시작 단계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내 옷을 전부 빼서 본 적은 없었다. 정리를 할 때 옷장에서 쓰윽 둘러보고 안 입는 옷만 꺼내서 정리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옷들을 다 꺼내서 침대에 쌓았다.
'꺼내보니 많구나.'
내 옷들의 총량이 파악됐다.
그리고 하나씩 만져봤다.
'웬걸... 생각보다 설레지 않는 옷들이 많다...!'
하나씩 만져보는 것과 옷장 안에 옷걸이에 걸린 채 눈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하나씩 옷들을 대면해 보니, 못 보던 얼룩 자국이나 수선해야 할 작은 부분들이 확연히 보였다. 그리고 입지도 않으면서 아까우니까 그대로 옷장에 보관만 해 두던 낯선 옷들도 보인다.
'내가 못 본채 하며 살았구나.'
옷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게도 꺼내보니, 비울 옷들이 10%나 있었고, 비울 옷들을 모아보니 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옷들... 다 언니 옷이었잖아...?
정확히 말하면 언니가 안 맞다고 나한테 준 옷 혹은 언니가 버린다고 하니까 아까워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언니와 나는 성인이 되고부터 옷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언니는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레이스 옷부터 셋업 정장까지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편견 없이, 채도와 명도 따지지 않고 다 좋아한다.
화려하게 입은 언니와 밖에서 만나면 그에 대비되게 수수하게 차려입은 나는, 가끔 언니의 매니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하하.
그런 언니의 옷들 중에서 무난한 옷들을 들여놨었다.
이번에 옷을 다 꺼내서 하나씩 하나씩 '설렘'체크를 해 보니, 비울 옷들이 다 언니한테서 받은 옷인걸 알게된 것이다.
언니에게 선포했다.
이렇게 선포하고 남아있는 옷들을 다시 보니, 그중에서도 언니한테 받아서 기분 좋게 하는 옷들도 있다.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언니, 언니가 줘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옷들도 있어. 잘 입고 있어~ 고마워~~"
언니가 이러한 나를 보며 제안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 너한테 돈 주고 팔아야겠다. 어때?? 괜찮은 방법이지?"
어머나.
분명 나를 위한 방법인 것 같은데, 말 실수한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이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내게 맞지 않은지, 남아있는 옷들을 보며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버린 것만 생각하고 언니에게 옷을 주지 말라고 했지만, 남아있는 옷들 중에서도 자신감을 업 시켜주는 언니에게 받은 옷들도 발견하고, 고마움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는 물건을 들일 때, 전보다 더 신중하게 생각할 지혜가 생겼다.
좋아하는 옷들로만 가득 찬 옷장을 만들고 보니, 날이 지나고 옷 수납순서가 뒤바껴도 보는 것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