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링시저' 후기

시저는 죽었고, 시저는 살아있다.

by 땅콩

▶️공연 정보

기간: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 7월 20일 일요일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예매: NOL 티켓 단독 예매


ℹ️주의 및 참고 안내

생수를 제외한 음료는 반입 금지입니다.

공연 이벤트도 있으니 티켓 판매처에서 확인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입구에서 배우들의 퇴근길 인사가 가능하니, 질서를 지키며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배우에게 전할 선물 및 편지는 데스크에 드려야 합니다.


▶️공연 관람 포인트

프로그램 북을 구매 후 공연 관람 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공연에 대한 기획 및 제작자의 의도 및 이야기를 알고 관람하면 극의 흐름 파악과 배우들의 연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극장이 크지 않아 뒷자리여도, 보는데 불편함은 없을 듯합니다. 다만, 중앙 자리에서 관람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극의 흐름을 따라가며, 조명 연출과 배우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보는 것도 재미 요소가 될 듯 합니다!!

공연 전후의 캐스팅보드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견해 및 공연 후기

✔️무대 연출

조명이 주는 정보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시저가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힘을 가지고 있는 장면에서는 파란 조명이 사용되었고, 브루터스가 메인일 때, 즉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을 때는 노란 조명이 사용되었다. 등장인물이 죽는 장면에서는 빨간 조명이 사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피를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시저가 칼에 찔려 죽음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천장에 설치된 조명 장치를 활용해 여러 개의 직선 형태의 붉은 조명이 시저에게 집중적으로 비추어졌고, 이를 통해 시저가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브루터스가 칼에 찔리는 장면에서는 무대 전체가 붉은 조명으로 물들어 죽음을 암시했으며, 동시에 밝은 흰색 직선 조명들이 브루터스를 비추며 그가 칼에 찔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또한 시저가 죽은 이후, 브루터스가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이는 장면에서는 밝은 초록색 조명이 사용되었다.

프로그램 북에 실린 오세혁 재창작자 글을 보면, 시저는 ‘절망의 해답’이라고 표현되는데, 파란 조명은 그런 의미에서 현재 속에서의 절망적인 해답을 상징하고, 시저의 죽음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과 시저에 반하는 인물들은 노란 조명으로 표현되어 어지러운 현재를 나타내는 듯했다. 그리고 브루터스의 복잡한 내면과 혼란스러운 상태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이 겹쳐질 때 나타나는 초록색 조명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저는 파란 조명, 브루터스는 노란 조명, 죽음은 빨간 조명으로 연출되었다는 것만 알아도 공연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무대는 반원모양으로 원주에는 계단과 높은 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단 위와 아래의 원주 모양에서는 나른한 안무들이, 지름에서는 직선적인 움직임이, 중심에는 움직임이 많진 않더라도 에너지가 넘치는 힘 있는 동작들이 배치된 듯 느껴졌다. 코러스 배우들과 주연 배우들의 안무 합이 주는 시너지가 인상 깊었다.

소극장에서 적은 인원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 공연이었다.


+ 프로그램 북에 실린 권혁 안무가님의 글에 따르면 상승과 하강이라는 키워드로 연출님과 배우분들과 함께 했다고 했다. 무대에서 상황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보는 것도 재미 요소가 될 것 같다.


++ 무대 위에 설치된 비뚤어진 샹들리에는 공연 관람 중에 조명에 의해 그 그림자가 배우 위에 쓰인 왕관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또한 재밌는 포인트였다.


✔️등장인물 설명 및 연기

앞서 말했듯이 코러스 배우들과 주연 배우들의 안무 합이 주는 시너지가 인상 깊었다. 주연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느라, 코러스 배우들은 안무와 동선을 외우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다.


브루터스 역의 유승호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로써 명분, 대의, 명예를 중시하기에 극의 초반에는 시저만 죽이며 학살은 안된다고 하지만, 마지막엔 시저 잔당들을 모두 죽였어야 한다며 후회를 한다.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장면에서 브루터스가 뼛속까지 귀족출신임이 엿보였으며, 이 장면을 연기할 때 악에 받치는 유승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유승호 팬으로서 배우님이 이때 아니면 저렇게 소리 지를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목 괜찮으려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살인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딸에게 조차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고결함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원작 '줄리어스 시저'는 권력을 잡기 전의 인간 이야기 라면, 연극 '킬링시저'는 권력을 죽인 후에도 반복되는 아이러니한 삶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원작을 재해석했다. 이 점에서, 로마를 위한다는 대의로 시저를 죽였지만, 이후로도 바뀌지 않는 현실과 죄책감, 정치적 실패로 인하여 극 초반 고결하고 명예를 중시하던 브루터스가 혼란스러워하며 무너저 내리는 연기가 인상 깊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도 결국 ‘X’로, 이들 또한 브루터스의 일부이자 그의 내면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데미안』에서처럼 말이다.

(그처럼 큰일을 감당하려 했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계획도 세우며, 자신의 마음도 용기 있게 들여다보며 결단을 내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시저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공화정을 지키고 자신의 명예를 바로 세울 수 있으며,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브루터스의 모습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귀족처럼 느껴졌다.)

명예와 정의를 중시하며 현실이 본인 계획 같지 않음에 절망하는 브루터스 역이 유승호 배우에게 정말 찰떡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소화를 잘하셨다고 생각된다.

+유승호 배우는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두려워 맙시다... 두려워 맙시다... 우린 시저의 적이 아니라 시저의 친구요. 시저라는 낡은 이름을 대신할 새로운 이름들이라고! 그러니 두려워 맙시다..."로 꼽았다.

대본에 감정 지문이 있지 않았으며, 브루터스가 하는 말은 그의 감정과 행동에 상반되었기에 흥미로웠다고 했다. 나 또한 두려워 말라는 저 말이 두려운 스스로에게 브루터스가 하는 말처럼 느껴졌고, 친구였던 시저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으며, 시저라는 낡은 이름을 대신할 그 새로운 이름들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카시우스/안토니우스 역의 양지원

연기가 미쳤다. 카시우스와 안토니우스가 정반대 되는 캐릭터임에도 특별한 장치 없이 그 둘을 다르게 연기했으며, 혼란스러움을 야기시키고 그 혼란스러움을 여유롭게 방관하는 빌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연기하셨다. 노래도 좋았으며, 관객을 집중시키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연기를 마친 이후 유승호 배우와의 케미도 재밌었다.


시저 역의 김준원

브루터스 입장에서 시저는 죽어서도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기에 징글징글 했을 것 같다. 그러기에 내가 시저를 연기한다면 끈질기고, 징글징글함을 표현하면서 연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김준원 배우의 시저 연기는 이런 나의 생각과 달랐다. 극 초반에는 신이 되고 싶은 권력자의 모습을 연기하며 약간 미치광이 같았으며 죽음 이후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 같았다.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은 것은 시저 이름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마찬가지였기에, 그의 연기는 이런 점까지 보였으며,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자답게 파워가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느낀점

'엔젤스인아메리카'보다는 재밌었다. 해당 연극은 정말 기획/제작/연출팀이 관객에게 너무 불친절했다. 극에 대한 설명을 배우들이 쳐내는 대사로 해결하려는 듯한 느낌으로 배우들이 말하는 대사양은 어마어마한데, 해당 내용이 관객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 북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극의 배경지식을 알고 싶었으나 정보가 부족했다. 이 점이 나는 너무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이번 '킬링시저'는 이런 점을 느끼지 않아서 좋았다.

공연을 보면서 브루터스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궁금했으며, 내가 브루터스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연극 내내 시저와 브루터스가 외쳤던 정의(definition이 아닌 justice)란 무엇인가. 그 정의에서 옳음이란 무엇인가. 나의 옳음이 옳음이 정녕 맞으며, 그 옳음을 위해 옳지 않은 행동(살인)을 해도 정당한가.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고민은 계엄 및 탄핵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정치인과 유권자인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이지 않나 싶다. 킬링시저의 줄거리가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와 흡사하다고 느꼈기에,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에 보게 된 킬링시저를 통해 뜻깊은 고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것은 현실인가 꿈인가'라는 브루터스의 질문에 대한 X의 답이었다. '꿈에서 진실을 좇는다면 현실이고, 현실에서 꿈을 좇는다면 꿈이다.' (근데 사실 맞는지 모르겠음.. 이 금붕어 같은 기억력 같으니라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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