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사의 일상
연애할 때도 안 그랬다. 애인에게 헌신하는 것? 헌신하다가 헌 신짝처럼 버린다. 네 멋대로 살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표현해, 그게 너야! 잉잉 울면서 애인과 싸운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내가 친구들에게 맨날 하던 말인데, 살다 보니 내가 헌신을 넘어 ‘프로수발러’가 되어 버렸다. 맙소사! 음악치료사는 세상 완벽한 프로수발러다.
어려웠다. 세션이 끝나고 마음을 털고 빨리 빠져 나오는 것. 치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내 긴장한 탓에 정신이 없었다. 조금만 딴생각을 하면 대화를 놓치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었고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외줄타기 하면서 접시를 돌리듯 온 감각의 안테나를 바짝 세웠다. 시간이 흘러 능숙해진 뒤에도 세션에 온 에너지를 쏟는 건 마찬가지였다. 중심을 잡으면서 타인의 기분에 모든 걸 바라지하고 들어주고 도와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이긴 하지만 비유하자면 ‘프로수발러’랄까. 지금 와서 보니 육아와 맞먹는 큰 에너지였다. 모든 걸 끄덕끄덕 수용해 줘야 하니까. 물론 세션 시간에 한해서지만.
음악치료사가 만나는 이들은 무언가 보통 삶의 범주에서 살짝 비켜간 사람들이다.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한두 개씩 안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인생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별별 상상치도 못한 일들을 겪어냈다. 내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숙연해진다. 이 분들의 인생 반 밖에 살아보지 못한 내가 감히. 부모님 다 살아계시고, 큰 병치레 없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내가 어찌. 그 고통의 깊이를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이럴 때는 그냥 납작 엎드린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한 수 알려주세요. 좋은 노래 아시는 것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어설픈 칭찬보다는 몸을 낮추는 것이 더 효과 있다. 그러면 입을 꾹 닫은 사람들도 조금씩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잘 모른다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께 내가 배우는 것도 많고, 깨우치는 것도 있다.
그분들의 언어에 희노애락이 다 있다. 인생이란 건 모두 좋을 수만은 없지만 그 중 보석 같은 진리가 있다. 불행의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아도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울컥 하는 걸 참느라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오기도 한다. 고통스러운 단어들을 내뱉으면서도 담담한 모습을 볼 때, 그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왜소한 몸을 안아줄 때, 머뭇거리는 손끝을 바라볼 때도 그 아픔의 깊이가 얼마인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그의 인생이 내 안에 훅 들어와 머릿속에 맴돌때면 마음이 아리기도 한다. 그렇게 당신은 종종 나의 일상을 침범한다.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당신은 ‘간밤에’ 천사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왜 천사를 기다리는지 묻자,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서라고 했다. 절제된 단어 끝에 고통이 매달려 있다. 수도 없이 자살 시도를 한 이에게 천사는 자신을 구원해 줄 존재일까? 그녀의 역사를 아는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괜히 ‘저랑 더 놀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럴 땐 그 감정을 온전히 마주하고 난 뒤 일지를 쓰고는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세션 전과 후 마음조심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음악치료사도 일상이 있고 이어지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고 나올 때 일정한 루틴을 반복한다던지, 차나 커피를 마시며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던지 각자의 방식으로 ‘털고 나오기’를 반복한다.
루틴은 어떤 상황에 들어갈 때 몸과 마음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아는 유능한 음악치료사는 세션을 하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깨끗이 씻고, 나올 때 역시 손을 씻는다. 고강도의 내담자들을 자주 만나는 그는 손을 씻는 자신만의 루틴을 철저히 지켰다. 처음에 나는 우습게도 그런 행위들이 ‘직업적 허세’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고 나서 보니 루틴은 음악치료사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준비운동과 같은 것이었다. 운동선수들이 고강도의 운동을 하기 위해 앞뒤로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처럼 말이다.
타인이 주인공인 직업. 철저한 관찰자. 그건 음악치료사의 숙명과도 같았다. 치료사는 무조건적인 지지로 남을 서포트하는 역할, 그리고 약간의 봉사정신이 추가된 직업이다. 엄마가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끼니를 챙기듯, 치료사는 그들의 나쁜 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서를 지지해준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각자가 가진 필요충분한 양이 있을테고,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 자신의 인생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음악치료사의 일이다.
남을 돕는 직업에서 ‘탈진’은 종종 발생한다. 감정소모도 많을 뿐더러, 당신을 향한 순간의 집중력과 판단을 필요로 한다. 당신의 입술이 무얼 말하는지, 당신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 손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당신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윽고 당신이 아주 어렵게 모든 것을 드러냈을 때 조용히 그리고 안온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치료사다. 초라하고 쓸모없게 느껴져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손을 잡아도 버틸 수 있게 치료사는 늘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를 하루종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아득해질 때가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맞장구치는 것도 버겁다. 까페에서 친구의 연애사를 듣거나, 금쪽같은 점심시간 상사의 가정사를 듣는 일들이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다들 한번은 있지 않나. 아동 파트는 체력이 힘들고, 성인 파트는 정신이 휘달린다.
그래서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자신과 음악치료사로서 직업인의 균형을 위해 선을 긋는다. 퇴근 후 스위치를 끄듯 다시 나로 돌아온다. 분리되지 않으면 베터리가 바닥까지 소모된다. 결국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내담자를 통해 역전이를 하거나 끌려다닐 수도 있다. 김영하의 소설 「당신의 나무」 속 내담자를 사랑한 치료사처럼, 그렇다면 미션 실패다.
올타임 근무를 하는 음악치료사들은 스스로의 정신적 회복을 위해 안식년처럼 일정 간격으로 재충전기를 갖는다. 슈퍼바이져와의 상담을 통해 정신적 찌꺼기를 다 걷어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주변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나는 주로 여행을 떠났다. 혼자 여행이 주는 회복의 힘은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도 있지만 오롯이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풍경과 새로운 자극이 몸과 마음을 일깨우고 치유한다. 일상에서의 의무를 잠시 내려놓는다. 관계의 어려움도 잠시 전원을 꺼 놓는다. 가득 채워진 그릇을 비우면 다시 담을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회복의 시간을 통해 다시 사람들을 만날 힘을 충전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나는 다행히 잘 버티고 있다.
그러면 다시 프로수발러가 되기를 자처한다. 당신의 삶은 충분히 소중하고 사랑 받을만 하다. 지금까지 돌보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하면 된다. 거기에 준비된 프로수발러, 음악치료사가 있다. 당신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몸과 맘을 튼튼하게 관리하고 있는 치료사가 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언제나 당신의 안녕을 기도하니까.
에세이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의 연장선에서 음악치료사의 일상과 직업적 생각을 담고 연재합니다. 책이 궁금하시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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