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예술가

by 구수정


흰 도화지에 점을 찍을 용기만 있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그리고를 떠나 그림이 좋아진건 다름아닌 시간을 밀도있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 완성되면 나의 공들인 시간이 하나의 사물로 남아 축적되는 기분이 좋다.


대상을 다정하게 관찰하며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형태가 잡히는 것에 대한 포만감이 있다. 그리다 달라지는 부분을 발견하고 고치며 바로잡는다. 마치 수양하듯, 연습으로 한 곡의 소나타를 완성해가듯 말이다.


그렇게 대상을 뚫어지게 관찰하다보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기듯 오래도록 애정을 다해 바라 본 무언가가 나의 스케지북에 담긴다.


이 날은 그림을 그리다 엄마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엄마는 작업실에서 유화를, 나는 식탁에서 드로잉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엄마와 같은 걸 하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저릿하게 좋았다.


오랜만에 그린 그림이라 이까짓 손바닥만한 게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다 엄마에게 보여주며 코맨트도 받고. 수채화 할껀데 선이 너무 두껍다고. 쳇. 나에겐 지우개가 있다! 기초가 없어서 그런지 선을 한번에 그려야 하는데 여러번 연필을 대어 그런 것 같다. 자기 반성 중.


사각사각, 고요한 공간에 연필심이 종이에 부벼대는 이 소리가 좋다. 편안해진다. 엄마도 그림을 그리면서 이런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