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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를 기다려

주말 리추얼

by 구수정

#그림일지


이런 설렘을 언제 느껴봤었던지 아득하다. 좋아하는 이의 문자를 기다리듯 주말을 기다려왔다. 차를 타고 가다 지는 멋진 노을이나 나무들의 모양을 보고, 아 저건 보라색과 자주색을 써야겠다. 번지기로 해야겠다, 어떤 초록색을 써야겠다 상상 속에서 벌써 그려 본다.


무언가를 지속하게 하는 힘, 중독처럼 계속 생각나게 하는 그 힘은 아무래도 예술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가 아니어도 말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생계와 먼 쓸데 없는 일에 근육을 단련 시키고 사유하게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감각을 키우고 꿈을 꾸게 하는 것.


붓도 새로 주문하고, 번지지 않는 펜들도 샀다. 필요한 색깔들도 함께 왔다. 텅 빈 틴케이스에 하나 둘 색색의 고체물감이 자리를 차지한다. 빨리 그리고 싶어! 알고리즘도 그림 그리는 것만 띄워준다.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그저 아이랑 있을때 습관적으로 하던 휴대폰을 내 스스로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다. 수채화는 내게 아직 어렵지만 하나 둘 손에 익혀간다. 릴스의 그림 그리기는 쉬운 듯 보여도 막상 해보면 맘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저분하게 번지던 물감도 제법 방법을 알아 가고, 아파리 연습도 해본다. 이렇게한 10년 하면 잘 그릴 수 있겠지.


붓을 사니 확실히 손맛이 다르다. 화홍 전문가용 수채화 둥근 붓은 모가 탱글탱글 하고 물감이 듬뿍 묻혀져 선명하게 발색된다. 전에 쓰던 것은 모가 숭숭 빠지더니 그런 것도 없고. 펜은 사쿠라와 윈저앤노튼 두 종류를 사 봤다. 사쿠라는 크기별로 된 것을 구입했는데 애니메이션 용이다. 사쿠라는 좀 뻑뻑하고 윈저는 부드럽지만 약간 번진다. 펜드로잉 할 때 좋을 것 같다. 역시 장비빨이 있다.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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