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번지듯 할슈타트

수채화

by 구수정

그라데이션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수채화 때문에 오늘은 그냥 아무 그림이나 그려보았다. 인터넷에 아무거나 찾아 그렸는데, 그리다보니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같다?


갑자기 그리운 조 아저씨.

우리 투어 일정에 조 아저씨가 자기 본가 가는 걸 맞춰 여행 가듯 방문했었다. 왜냐면 내가 그 전에 할슈타트 가고 싶다고 백번 말했거든.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지역은 할슈타트를 지나서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보고 오자는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의 팔순노모는 자식들이 떠난 3층의 커다란 집에서 혼자 두 마리의 개들과 살고 계셨다. 난방은 각 방마다 나무를 때우는 난로로 공기를 덥히는 옛날 집이다. 등이 굽은 백발의 백인 할머니는 한국에서 온 손녀뻘 우리에게 밭에서 자란 셀러드를 뜯어 상을 차려주셨다. 4월이었지만 방은 추워 난로에 의지하며, 삐걱대는 침대 위에서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 맞다! 그리고 선물로 커다란 개들과 밭을 가꾸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 드렸다. 그 때도 그림을 그렸네.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 아저씨가 “오… 러블리 수정” 했던 것도, 감격한 할머니가 따뜻하게 안아 주던 그 온도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 그림은 아직 그의 집에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그의 낡은 폭스바겐 차 뒷자리에 셋이 낑겨 탔다. 알 수 없는 독일어의 유행가가 차 안에 흐르고 다들 잠든 사이, 가운데 앉은 나는 멀뚱멀뚱 밖을 보고 있었다. 운전하며 백미러를 힐끔 보던 조 아저씨가 큰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윙크를 날리는 그. 터널을 지난 차창 밖은 갑자기 안개가 자욱한 호수가 펼쳐졌다. 할슈타트였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노랫소리가 커지고 차 안에 멀뚱 눈을 뜨고 있는 그와 내게 강렬한 조명이 켜진 것만 같았다. (아, 아빠뻘만 아니면 멜로각이었다! ㅎㅎㅎ)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명을 지를까 내가 입을 막고 눈이 커지자, 백미러 속 조 아저씨도 눈꼬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그는 일부러 고속도로를 피해 이 길로 돌아간 것이다. 깨어 있는 단 한 명의 여행객을 위해! 좋은 것을 보여주고픈 아빠의 마음이랄까. 할슈타트 하면 가는 길에 보았던 그 풍경보다 돌아올 때의 그 드라이브가 먼저 떠오르고 가슴이 뛰는 게 그 때 그 마음이 불쑥 내밀어서일 것이다.


조 아저씨, 하늘에서 잘 있으시죠? 보고 싶어요.


-


펜이 없어서 윤곽선 마무리를 못 했다. 내 기억처럼 선명하지 못한 이 그림은 그냥 이렇게 끝내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망했다, 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