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글쓰기를 생각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의미 있었던 글쓰기는 무엇이었던가. 글을 쓸 때 감정은 무엇이었나. 곱씹어보면 내게도 몇가지 변곡점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중 하나.
초등때 나의 글쓰기는 누구나 그렇듯 일기였다. 요즘은 아동학대라며 내주지 않는 일기쓰기 숙제. 그리 성실하게 쓴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일기가 가식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기는 나름 그 날의 기분이나 사건들을 솔직하게 기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솔직한 글은 숙제로 내어놓기 싫었다. 평범한 날들은 그저 그렇게 쓰면 되는데 뭔가 부모님과의 문제, 친구와의 갈등, 내 고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면 될 것을 굳이 글로? 나중에 보면 창피하잖아. 게다가 그걸 담임선생님이 매일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6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일기쓰기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퇴직을 앞둔 할아버지 선생님은 자습시간에 교실의 교사용 책상에 앉아 아이들이 낸 일기장을 읽어보곤 하셨다. 그러다 안경 너머로 내 얼굴을 한번 일기장을 한번 바라보곤 했다. 아이들은 뻔히 자기 일기장을 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수줍어 할 때도 있었고 알아주기를 바라듯 눈맞춤을 할 때도 있었다.
선생님은 서른세명 아이들이 발행하는 일기장의 최고 독자였다. 성의 없는 ‘참잘했어요’ 도장은 없었지만,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한두줄의 답장을 달아주셨다. 그게 제법 쏠쏠했다. 아이들의 감정을 다독이는 말도 때론 응원하는 말도 써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기쓰기숙제는 글쓰기 향상 이런 목적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보듬으려는 할아버지 선생님 나름의 노하우였던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영악하게 담임쌤이 내 일기장의 애독자라는 점을 알아채고는 다른 방식으로 일기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부반장이었던 나는 반에 왕따 사건이 있으면 있으면 애둘러 고발하는 식으로 쓰던가 물품이 없으면 이런게 없어 불편하다 썼다. 한 면을 다 써야하니 아주 생생하게, 최대한 간절하게. 그러면 쌤은 슬그머니 물품을 사두거나 소외된 아이를 챙겼다. 쓰고는 싶은데 쌤이 읽기를 원치 않으면 노랑색 펜으로 썼다. 나중에 나도 못 읽는 건 함정. 정 말 쓸게 없으면 자작시 따위로 듬성듬성 한 면을 채웠다. 그러면 쌤은 내 이름으로 도내 글쓰기대회 같은데 출품해서 나도 모르는 상을 받기도 했다. 잉?
담임쌤이 정말로 내 일기를 꼼꼼히 보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일기쓰기에 재미 들리고 분발했던 것이다. 그를 제1독자로 삼고 더 생생하게 내가 이 교실의 숨겨진 일들을 대변하리라! 물론 내 이야기도 썼지만 누군가 읽을 걸 대비하여 최대한 정제된 단어를 사용했다. 반친구들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도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은 쓰기 싫은 12살 아이, 정의감에 불태우기도 한 내 일기쓰기는 독자가 있는 글쓰기였다.
그러다 한 사건이 터졌다. 교감선생님이 다른 친구를 칭찬해주어 섭섭했다는 이야기를 썼다. 칭찬을 해 줄꺼면 다 같이 해주어야지 한 친구만 특별하게 말한 것이 속상하다는. 그런데 우리 담임쌤이 교감쌤의 답장까지 받아온 거다. 이로서 내 일기장은 교무실에서도 돌려보는 일기장이 되버린 것. 독자가 늘었다!
그 이후 내 일기장의 애독자는 우리 부모님이셨다. 그렇게 재미지게 쓰던 일기장의 마지막은 중2 어느때였다. 내 기억에 너무 힘들었던 시기라 그걸 다시 생각해내서 쓰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꺼내고 싶지 않은 일들은 묻기로 하고는 일기쓰기를 멈췄었다. 자물쇠를 굳게 잠그고 갔건만. 타지로 떠난 중학생 딸이 그리운 우리 부모님은 자물쇠를 부수고 일기를 자주 돌려 보셨다.
그렇다고 내가 글쓰기에 꿈을 둔 건 아니었다. 초딩때도 나는 대상 정도는 안 되고 우수상 정도 되는 실력임을 스스로 알았다. 소설처럼 기발하거나 다른 세계관을 펼칠만한 창의력을 가지지 못한 것도 알았다. 그런 고양된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뭐가 되려고 쓰는게 아니라 가볍게 쓰니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이제 종종 글쓰기로도 밥벌이가 되니 참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