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을 부풀리는 게 자기홍보라구?
#복어 불나방 배짱이
클래식 전공자들의 프로필은 보면 볼수록 휘황찬란하다 어디 유학에 누구 사사에 최우등졸업에 누군가의 극찬을 받고 어디서는 기립 박수를 받았단다. 그런데 때론 무대 위에서 그 정도의 실력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이런 말까지 써야 하나 싶기도 하고.
짝꿍이가 유학생활을 하고 오면서 대략 이 대단한 이력에서 찐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일단 학교명에서 수준이 파악되는데 유학 준비를 하면서 학교순위를 알 수밖에 없다. 대충 뉴욕시 강남구 청담대학교 이런 곳은 학원일 가능성도 높고 동유럽 일부 학교는 돈만 주면 유학생을 받는 곳도 많다. 그리고 미국만 해도 코스가 여러개인데 유학생들은 본인이 입시를 치뤘고 각 학교의 커리큘럼을 꿰기 때문에 정규학위과정인지도 확인이 된다.
누구 사사는 원데이클래스인지 학교에서 한두학기 배운건지 캠프서 만난건지 찐 제자인지는 같은 업계에선 대략 안다. ‘극찬…기립박수’는 참 말하긴 애매한데 서양 애들은 워낙 입바른 칭찬이 습관화 되어있단다. 증명하기도 어렵잖아. 겉으론 맨날 브라보 하면서 걔들이 보기엔 동양애들이 신기하다 이 정도의 의미일 뿐, 실제 유색인종에게 종신교수 같은 주요한 자리를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졸업 하고 안 돌아가면 걍 불법체류자. 00교수라는 건 왠만하면 강사.
뭐 출판업계에서도 이력부풀리기는 빈번하다. 요새 책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검증 없이 누구나 내기 때문이다. 내 책꽃이에도 전직 교장, 부시장 등의 에세이가 펴보지도 않은 채 꽂혀있다. 이력부풀리기는 특히 정치인들의 일대기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책은 앞에 자신의 사진이 똭 붙어있고 무지하게 두껍다. 이야기를 벼리하지 않고 투머치스피커, 태생이 정치인이었음을 부각한다. 그리고 맨 뒤에는 위인전도 아니면서 연표가 서너장 붙어 징그럽다. 책은 퀄리티에 비해 턱없이 비싼데 이게 페이백으로 사용된다는 얘기가 있다.
여기에 인풀루언서가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특정분야의 전문가들이 명함처럼 책 출판을 하기도 한다. 나도 두번째 책을 낼 때 출판사에서 날 설득한 지점이기도 하다. 책을 냈다는 건 그 분야에 어느정도 고민과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거니까. 여튼 책을 내는 목적은 다양해졌고, 독자로서 좋은 책을 고르려면 출판사의 규모나 전문성 목차 등등등 여러가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
듣기론 한 군데서 책을 연달아 낸 것도 의뭉스럽단다. 자비출판일 가능성이 크다고. 큰 출판사일 수록 신뢰가 높지만, 그렇다고 독립출판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흙 속의 진주가 발견되기도 한다.
추천사, 그것도 아주 재밋다. 유명인들의 추천을 받은 책들 중에는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쓴 티를 은근히 낸다. “(읽어보진 않았지만)애는 착해요. 또는 평소에 성실해요” 수준. 마치 추천자들이 자기방어를 한 것처럼. 이것도 일부는 돈과 인맥.
원고를 읽고 쓴 찐 추천사는 책을 읽기 전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 책을 읽고나서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니 세상을 바꿔줄꺼야’ ‘글이 어마어마해’ 라며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생각나는 건 최재천 교수님의 <휴먼카인드> 추천사가 있다. 누군지 기억나진 않는데 김영하 소설 <작별인사>의 추천사는 처음부터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아! 내가 놓친게 있구나. 추천사를 보고 산 책이 있는데 양다솔작가의 에세이에 붙인 이슬아 추천사. 내용은 대략 ‘이 친구를 만나고 오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이 추천사를 보고 구입해 한때 최애책이 되었다. 끝내주는 이야기꾼이다.
쨋든 복어처럼 자신의 이력을 부풀리는 행위는 아주 일상적이 되었다. 복어처럼 사는게 어때? 자기PR 시대에! 복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복어는 매 순간을 부푸러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복어의 이미지를 떠올렸을때 부푼 모습이 딱 떠오르지 않나. 마치 한껏 꾸민 연예인처럼. 원래의 복어는 어떤 모습이었더라… 다만 알고선 못하겠다. 뻔뻔하지는 못해서.
-
난 그보단 불나방에 가깝다. 물불 가리지않고 뛰어들면서 스스로 ‘깊이에의 강요’를 요구하는.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이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뎀빈다는 것이다. 이제는 덜 다치고 싶기에 좀 설렁하고 싶다만, 몸에 인이 박힌 듯 완벽주의는 나를 지치게 한다. 성에 안 차는 걸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