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노트
꼬박 4년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다면 바로 노트 쓰기다. 요거 나만 알기 아까우니까 필요한 사람들은 꼭 써보기를!
1. 오선보 노트
음악학 연구자의 첫번째 노트는 음악 분석을 위한 오선보이다. 채보에 관한 왕도는 뭐 걍 버티면서 하는 수밖에. 아직 국악은 기계의 힘에 기대는게 오히려 품이 더 들고 조나 박자표 하나 적는데도 채보자의 판단과 해석이 더 크기 때문에. 그리고 나으 주제는 8.5.8박처럼 2박과 3박이 섞인 뭐 이런게 많아서 더 괴롭. 굿거리 이런건 좀 프로그램이 쉽게 해주나?
2. 막쓰기 노트
그야말로 막 갈기는 노트다. 뇌에 있는 연구 주제에 관련된 모든 걸 처음 쏟아내는 지면이라 할 수 있다. 박사논문은 양과 범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일단 꺼내어 체계를 잡는데도 노팅 양이 많다. 현장 조사를 할 때 막 갈기거나 할 일에 대한 리스트를 적을 때, 논문 지도 받을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고 발전 시킬 때 아뭏든 모든 첫 문장은 여기서 시작 된다.
이런 것들을 한 노트에 적는 이유는 첫째, 다시 복기할 때 좋다. 시간 순으로 이 논문에 관한 내 작업이 쭉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길이 흐려지거나 뒤집어야 할 때 어디서부터 다시 가야 할 지 되짚기 쉽다. 체크리스트와 아이디어 메모를 따로 쓰면 복기하는데 쓸데없는 에너지를 쓴다. 둘째, 중요한 메모는 찢어서 붙여 놓기 쉽다. 내용이 바뀌었을 때 혹은 업그레이드 되었을 때 붙여 놓은 메모를 구겨 버리며 약간의 쾌감을 느낄 수도.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이 노트를 세네권 쓴 것 같은데 어떤건 현장 조사 갔다가 가방에 넣은 막걸리가 터져 술냄새도 나고, 초창기 메모와 최근 메모를 보면 이렇게 발전했나 싶기도 하다. 요점은 한 노트에 한 주제의 내용을 쭉 쓰는 거다. 이것저것 섞지 말고.
2. 카드형 노트
이건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가 독일 유학시절 "내가 쟤들보다 더 잘 외우는데 논문 퀄리티는 왜 떨어질까?"라는 고민에서 찾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들은 카드형 노트를 쓴다는 것이다. 마구 떠오를때마다 카드에 쓰고 어느정도 모아져 그 주제가 무르익으면 카드를 재배치하여 논문 한 편이 완성된다. 아이디어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어느정도 논문의 방향성이 잡혔을때 나 역시도 이걸 위계를 잡고 구조화하는데 애를 먹었다. 분량이 너무 많고 많은 음악 장르가 복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걸 단번에 확인하거나 순서를 쓱싹 바꿔보기를 하고 싶어도 기존의 노트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학위논문을 약간 비켜가지만 중요한 내용이 있거나 동시에 쓰고 있는 논문들에 레퍼런스가 같이 쓰일 경우가 있었다. 그럴때 카드에 써서 모아 두었다가 다른 주제 논문을 조합할때 쓰면 아주 유용하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생각의 흐름을 눈 앞에서 새로운 자리배치만으로도 충분히 역행할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소논문을 두 편 썼다. 완전히 강추!
그 다음 단계는 워드로 옮겨 글을 쓰는 거겠지. 생각은 의외로 컴퓨터를 켠다고 바로 켜지는게 아니라 손으로 쓸때 더 깊이 뻗어간다. 써야지!하고 한글파일 띄우면 막막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노트 작성 방법이 예비 연구자들에게 도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