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단계는 성장과 같더라

by 구수정

연구의 단계란 대략 이렇게 나뉜다.


1. 받아적기

2. 질문하기

3. 자기 말하기


1. '받아적기'란 그 학문에 진입하기 위한 초입의 상태로, 백지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선행연구들을 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학교/직장 등 그 환경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 하에 받아적고 소화하고를 반복한다. 받아적다보면 내 안에서 나름의 분류가 시작되어 차곡차곡 쌓아간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는 완전 인풋의 단계이다.


2. '질문하기' 단계는 받아적기가 어느정도 쌓였을때 이루어진다. 들어온 데이터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기준을 갖게 되고, 함축하여 표로 만든다. 이 연구자/교수는 이 현상을 왜 이렇게 설명했지? 선행연구에 대한 오류도 발견하고 물음표가 생성되는 시기이다.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누군가로부터 충족될 수도 있다. 다시 인풋을 실행하면서 대부분의 질문은 여기에서 해소된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 쌓이면 내 중심 주제가 된다. 그렇다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은 질문만 던지고 답을 찾는데 온전히 투자하지는 않는다. 소수는 답을 찾으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3. '자기 말하기'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자들의 것이다. 완벽한 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답을 향해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거리가 생긴다.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story)을 세상에 알리면서 타인과의 견해를 나누고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다. 어느정도 자신의 분야를 가진 연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단계다. 이 단계를 통해 이론화 된다.


연구자에게 보통 '졸업이 곧 시작'이라는 말은 '자기 말하기'의 시작이라는 말과 아주 유사하다. 이제 '자기 말하기'의 때가 되었다고. 물론 모두가 졸업한다고 자기 말하기에 진입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분류하다 끝난 연구도 많으니.


그런데 이런 단계는 꼭 연구에만 해당되지는 않는 걸 발견. 예술 학습의 '구전심수'의 방식은 어느정도 '받아적기'의 속성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예술 분야 전공자들은 학위과정을 마쳤어도 받아적기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미 뛰어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술계에서 학위과정은 도움만 줄 뿐 자신이 스스로 깨야 한다.


두번째 '질문하기'는 간혹 보인다. 예술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많이 보이고, 좀 더 나아가 세계와 연결하려는 이들이 보인다.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예술가들을 보면 그 노고가 경이롭다. 그런데 질문만 있고 답 찾기를 회피하거나, 질문할 역량도 없는데(받아적기가 충분치 않은데) 번지르르한 질문만 늘어놓는 이들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멋있어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자기 말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이 훤히 다 보인다 한다.


예술에 관해 일가를 이룬 이들은 (학위가 없어도) 이미 '자기 말하기'를 하고 있었다. 와우!


예술은 참 어려운 과정이다. 시간에 비례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고. 재능이 다 인가 싶으면서도 아니고. 왜 학위도 다 갖추고 남들 하는거 다 했는데, 뭔가 잘 안 된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받아적기'에 머무르지 않나, 혹은 '질문'이 있는가? '자기 말하기'가 가능한가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성장의 관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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