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elona, SPAIN
벌써 달랐다. 국경을 넘을 때 말이다. 햇살도 프랑스보다 더욱 따사로웠고, 가끔 지중해의 짠 내음도 났다. 화이트 와인의 달큼함도 느껴진다. 투박한 듯한 산세도 기분 탓인지 달라 보였다. 환호성을 지르며 차창을 모두 열고 바르셀로나를 향해 내달렸다. 추워진 10월의 유럽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부에 닿는 지중해 태양에 달궈진 카탈루냐 공기는 거칠고도 적극적이었다. 국경을 넘으며 보았던 저 산꼭대기 투우의 모습처럼.
마지막 여정 바르셀로나, 편안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기나긴 여행이 곧 끝난다. 이제 곧 집에 돌아간다. 다시 김치찌개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군고구마를 먹으며 실시간 한국 드라마도 볼 수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 매콤한 비빔냉면부터 먹을 거다. 안락하고도 익숙한 내 퀸사이즈 낡은 침대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디엄 탬포의 노래를 들으며 오후 햇살의 고양이처럼 늘어진 낮잠도 잘 수 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생소한 창 밖의 풍경은 이내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의 나라, 하다 못해 가로등, 벤치까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는 바르셀로나, 아직도 짓고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하몽과 화이트 와인, 시에 스타, 뜨거운 지중해, 접시 위의 바다 해산물 빠에야, 잠들지 않는 도시, 아직도 저 바다 건너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는 콜럼버스의 외침...... 이 모든 것이 아직은 쉴 때가 아니라고 나의 몸과 마음을 일깨운다. 그래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언제 다시 이것들을 볼 수 있을까. 어차피 돌아가면 다시 오기 힘든 기약 없는 이별일 터.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거리로 나선다.
여행자의 마지막은 늘 아쉽고도 아쉽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종점으로 하루 한 시간을 아껴 이 곳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사진에 담는다. 더 오래 보고 더 자세히 보고 싶다. 돌아가기 전의 아쉬움, 집에 대한 그리움, 여행 중의 긴장감. 몇 가지 감정이 바람처럼 내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고 사라진다.
바람을 따라 몬주익 성까지 올라왔다. 언덕을 오르니 숨이 차다.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저 멀리 뚝딱뚝딱 짓고 있는 사그리다 파밀리아가 보인다. 지중해가 내 발 밑으로 성큼 다가왔다. 배를 주조하는 조선소가 마치 레고 마을처럼 오밀조밀 보인다. 머리 위로 갈매기가 활강한다. 10월, 스페인의 태양은 뜨거웠고 바람은 차가웠다. 아주 어릴 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던 장면이 언뜻 스쳐간다. 일제 강점기 베를린 올림픽의 고개 숙인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흑백 사진도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참 이상하다. 아무 관련도 없는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그런 장면이 떠오르다니. 92년 황영조 선수가 이 곳, 몬주익 성을 지나 달릴 때도 이렇게 뜨거운 태양 아래 강렬하고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을까.
강렬하고도 냉정하리 만큼 차가운 바람이 나의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들추고, 나의 등과 가슴과 겨드랑이를 타고 들어 나의 타성과 오만을 씻어낸다. 10월 스페인의 태양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 뜨거움과 차가운 열정을 잊지 말라고.
바람, 바람은 떠돌이 여행자와 닮았다.
바람처럼 살겠노라, 바래 본다. 소유 없이. 그래서 떠난다.
그는 나라의 경계 없이, 시간의 그물망을 간단히 투과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그는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다. 그 시간이 천년이 걸리든, 만년이 걸리든, 형체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래도 사람들은 안다.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의 존재를 아는 방법은 그저 스치고 간 낙엽의 부대낌, 흩날리는 머리카락, 바람을 타고 온 바다 냄새, 다시 내 팔을 스치고 간 뜨뜻미지근한 대지의 열로 믿을 수밖에.
돌고 돌아 다시 돌아간다. 내가 있던 곳으로.
그리하여 바람과 함께 살련다. 언젠가 연이 닿으면 다시 이 곳, 몬주익 성에 서 있겠지. 이 바람처럼.
@2006, Barcelona, SPAIN
*대문사진은 구글에서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