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스토어 대남발 시대에
오늘 오후 아주 오랫만에 청담동, 압구정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유명한 플래그십스토어 몇군데를 가보고, 동네 분위기를 느끼며, 바뀐 모습과 바뀌지 않은 모습을 이야기 하느라 제법 걸었다.
오늘 느낀 점은 브랜드는 파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싸던 비싸던 이름값을 해야한다는 것.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도산공원 바로 앞의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브랜드의 역사와 핵심 제품을 가능케 하는 풍부한 구성요소를 오감을 만족시키며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아키텍쳐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해 세심한 곳에 신경을 꼼꼼하게 쓴 총체적 관리 수준을 확인하고 설화수라는 브랜드에 대한 회사의 의지와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제일 대충 하고 지나가기 쉬운 것이 필수/법적 공간이나 장치의 마감이다. 이것을 어떻게 전체 분위기에 잘 어우러지게 만드느냐에 따라 공간의 전반적 퀄리티가 판가름 난다. 설화수는 옥상의 기계실 출입문에 아래 사진과 같이 장소표기 처리를 했다. 마감의 중요성을 아는 브랜드의 격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나라 대표 화장품 브랜드를 설화수로 손꼽아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도슨트투어의 핵심인 도슨트가 진심을 다해, 가능한 오픈마인드로 대화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는 느낌이 들어 1시간여 못되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컬러를 차분하게 적용한 유니폼과 적당한 화장, 과하지 않은 편안한 표정이 안내하는 내내 변하지 않았다. 안내해 준 분도 그랬지만, 곳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느낌도 비슷했다.
아쉬움이라면 언론에서 보도한만큼 럭셔리의 느낌은 아니었다는 것. 사용 연령대가 높은 브랜드이다보니 어떻게 생각하면 재미없다, 지루하다 또는 약간 촌스럽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같이 간 일행과 브랜드 노화와 타겟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람들이 저절로 나이먹기를 기다리는 브랜드인가, 적극적으로 미래고객인 젊은 층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일까 하는 궁금함이 있고, 둘다 전자인 것 같다는데 동의했다. 40대 이후가 쓰는 비싼 브랜드, 나이들면 시도해 보는 고가 브랜드. 이렇게 가다보면 타겟의 이탈이 분명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설화수가 앞으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 다음에 들른 라 메종 드 드비알레 플래그십 스토어. 현재 리뉴얼이 진행 중인듯 해서 뭐라 평가하긴 그렇지만,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이름이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공간이 확 펼쳐져서 헉! 하며 들어갔더니 자잘구레한 소품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셀프를 채우고 있다. 게다가 직원이 어떻게 왔냐고 물어서 당황스러웠다. 설화수 스토어처럼 예약을 하고 와야하는 곳인가? 싶어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 한다. 고객 응대공간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은 고객응대 기본이 안되어 있는 증거다. 특별히 불친절하진 않았지만 리뉴얼을 한다 해도 비싼 수입오디오 전시장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름 프랑스 하이엔드 오디오라고 해서 감각적 공간을 기대했는데 매우 의외의 실망감을 느꼈던 장소였다.
그리고 최악의 네스프레소 플래그십 스토어
출장 가거나 여행갈 때마다 가끔씩 들른 해외의 네스프레소 플래그십 스토어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새 새로 나온 머신이나 캡슐들, 머천다이징 상품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한국 스토어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이나 서비스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있기는 했다. 아주 뻣뻣하기 이를데 없고 표정 변화가 없는 직원의 놀라운 불쾌함.
스토어 매니저로 추정되는 사람이 잠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검은 정장을 잘 차려입은 직원에게 서비스 해 드리라고 요청했고, 우리는 각자 원하는 커피를 각각 한잔씩 얻어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샵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어떤 네스프레스 스토어에서도 느낄 수 없는 부담스러운 시선과 무뚝뚝함, 귀찮아하는 표정 etc.. 명품브랜드 샵 출입문 근처의 안전요원보다 더 부루퉁해 보일 수 없는 분위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거기 온 사람들이 몇십만원짜리 커피머신에 관심도 없고, 그저 커피 한잔 얻어 마시려고 온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런 태도는 틀렸다. 무언가 질문을 해도 억지로 대답하는 듯한 답변과 찡그린 얼굴, 고객응대 화법이라고는 배워본 적 없는 목소리 톤과 말하는 방식, 뭔가를 더 알려주고 싶고, 관심가지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한잔 마시고 꺼져라 하는 생각뿐인 듯한 무관심과 무뚝뚝함이 놀라왔고 불쾌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미묘하게 어긋나서 머무르는 시간이 1분씩 쌓일 수록 불쾌함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조지클루니의 능글능글하고 위트있는 모습의 광고가 매장 한쪽에 설치된 tv에서 연속 재생되고 있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조지클루니는커녕 시커먼 옷을 핏 살려 입은 저승사자 분위기였을 뿐.
플래그십 스토어씩이나 차려놓고 거기 직원들은 왜 교육이 하나도 안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플래그십 스토어의 구성 요소가 무엇이라 생각한걸까?
매장은 공간에 브랜드를 인지&이해&호감갖게 하는 인테리어,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표현하는(필요시 역사까지) 제품이 갖춰지고, 그것을 전달하는 직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인점포가 컨셉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을 통해 서비스하고 브랜드를 전달해 줄 생각이라면 인테리어나 제품만큼 중요한 요소가 직원이다. 거기에 고객이 가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저 커피 내리는 요령만 알면 되고, 방문한 고객, 잠재고객이 무슨 기분을 갖게 되던 알 바 아닌게 네스프레소의 철학인가? 스토어를 나와서, 동행과 한 이야기는 파는 물건이 천원, 이천원짜리 캡슐이라 직원들이 그 정도인가보다 였다.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안되는문화적 충격이었는데, 브랜드 밥 먹은 십수년만에 제대로 현타 온, 네임드 브랜드가 준 최악의 경험이었다.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
직전에 방문한 네스프레소 스토어의 직원과 비슷한 연령대의 직원이 매장을 안내해 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래서 명품인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버버리스럽지 않은 최근의 콜렉션들에 대해 이야기하니, 직원들의 생각은 아직 더 바뀌기를 바란다는 대화가 이뤄졌다. 혹시 vip공간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알아보고 불가하다는 답을 해주었는데, 내가 미안하다가 아니라, 당신이 그곳을 못봐서 안타깝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답을 듣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쉽다? 정도.
보통 안된다라는 답을 할 때, 직원이 잘못을 한 것처럼 죄송하다, 미안하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이 무슨 잘못인가? 브랜드나 회사의 원칙 때문에 거절을 하는 경우는 당연히 있다. 그때는 고객에게 no 라는 답을 주면서 당신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나도 가진다라는 공감에 기반한 명료함과 당당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친절하지만 너무 성가시지 않은 정도의 대화, 적당한 물리적 거리의 유지, 브랜드에 대한 질문에 아는 만큼을 억지로 떠먹여주지 않는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말해 주고,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하는 적당한 관심과 호응이 딱 좋을만큼이었다. 사람이 적은 공간이어서 여유가 있어 그랬던거 같지는 않다. 네스프레소 역시 별로 사람은 없었으니까.
기대했던 디지털의 느낌은 층마다 설치한 스크린 외에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요 패션쇼들을 녹화해서 고객들에게 보여준다고는 하는데, 그 외 샵 자체의 디지털 변신은 없다. 난 솔직히 스마트 미러라도 있는줄 알았다.. 그리고 직원들이 아이패드를 들고 다닌다던데..했더니, 있기는 하지만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했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디지털로의 변신과 그에 대한 고객체험이 다르다!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결론. 그리고 아직 직원들도 브랜드의 방향성을 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아쉽다.
네 브랜드 너한테나 중요하지
플래그십 스토어가 유행이 된지 오래됐다. 땅값 비싼 곳에 공들여 만든 샵에서 어렵게 방문한 소비자를 쫓아낼 만한 경험을 주는 유명한 브랜드를 발견한 점은 소득인가 슬픔일까.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아직도 잘 모르고 대충대충 대한다면 아무리 유명 배우가 광고하고 스토어가 멋져도 호감이 사라진다.
재작년 엄마 생일선물로 에르메스에 스카프를 사러 갔다. 엄마 취향과 최신 트렌드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를 위해 열 몇장의 스카프를 일일이 펼쳐 보이며 코디하는 법과 스타일을 이야기 해 주면서도 단 1초도 스카프 펴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오히려 더 보여주며 열심히 신나게 응대해 주던 직원이 떠오른다. 물론 에르메스 스카프는 비싸고, 비싼 만큼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로 자기가 파는 브랜드가 고객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응대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비싼 값을 내가 제대로 잘 치르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고, 직원의 친절과 열의 역시 교육되고 가장된 것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원래 처음에는 그 매장에 들어온지 한달 된 직원이-본인 입으로 그렇다고 하며 스카프를 모른다는 말을 열번쯤 했다- 나를 먼저 응대해 주고 있었다. 자기의 말처럼 도대체 아는 것도 없고, 감각도 떨어져서 몇 장 본 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에 급 실망을 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스카프 매는 법을 나보다도 모르는 사람이 스카프를 팔아?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에르메스에서 벌어져? 에르메스도 한국 샵은 형편없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가려는 나를 다른 직원이 붙잡았다. 제대로 응대를 못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괜찮다고, 나는 이제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냥 신제품 보기만 하시고 가라는 직원의 이야기에 아주 방어적인 태도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달랐다. 한 두마디의 답이나 내 얼굴 표정 등을 세밀히 살피면서 여러가지 제안을 해 주었다. 열장쯤 봤을 때도 여전히 사고 싶지 않았는데, 서서히 마음은 풀려가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열심히 계속 다른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보여주는 과정이 진행됐고, 결국 엄마 선물을 샀다.
어떤 브랜드든 제품서비스가 기본이고 본질이지만, 제품에 대해 마음을 열고 상상력을 깨워주는 존재는 사람이다. 브랜드 journey에 사람이 끼어 있다면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자 영향력 가장 큰 nod는 무조건 사람이란 것을 잊으면 안된다. 멋들어지게 플래그십 스토어 인테리어 하고, 셀렙들 불러 오프닝 파티 열고, 직원 유니폼 폼나게 입히는 이유가 무엇일것 같나? 그리고 스토어가 평범하다고 브랜드 경험이 평범하지도 않고, 스토어가 멋지다고 브랜드 경험이 환상적인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좋은 경험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물론 그 반대도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