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이유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경험상 독서를 하지 않아도 입안에 가시는 돋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면 어디에 가장 먼저 생길까 궁금했다. 아마도 혀가 가장 유력한 듯하다. 혀에 가시가 돋으면 먹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고로 생존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혀의 중요성은 자주 잊히는 듯하다. 작은 혀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못할 때 내 몸은 비만이었고, 언어는 언제나 불평불만이었다.
3년 전 뒤늦게 독서를 시작하면서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이 이해되었다. 독서를 통해 생각이 조금씩 커지자 혀에 무게가 생겼는지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었고, 말은 전보다 신중해졌다. 독서량이 쌓일수록 뿌듯함을 느끼면서 앞으로도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독의 계획을 깨부숴 주는 책을 만났다.
“다독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독을 자칫 잘못 쓰면 과독過毒이 됩니다. 쇼핑하듯 책을 사고 곁에 쌓아두는 것으로 읽지 않음의 죄책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지적 허세와 지적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렇게 읽을 바에야 차라리 읽지 않는 게 낫습니다.” (프롤로그)
책을 읽지 말라는 저자의 확신이 찬 언어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성철 스님도 책을 읽지 말라고 하셨다. 2만 권가량 읽으신 성철 스님도 이 책의 저자도 왜 독서를 하지 말라고 할까? 성철 스님은 적당히 아는 지식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일명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말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읽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지적 허세를 부리지 않기 위해 읽지 말라는 책의 제목은 《쓰려고 읽습니다》이다.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제목이 공감되었다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요?”라는 질문을 읽고 ‘써먹기 위해서요’라는 답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책을 선택하기 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을 읽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선 지금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부딪혔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한 뒤 필요한 독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 방법은 바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목적 있는 독서이다.
“책은 수단입니다. 인생의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존재입니다. (중략)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책이 쏟아지더라도 당장 읽을 수 있는 건 지금 손에 잡힌 단 한 권의 책뿐입니다. 매번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이유가 명확하다면 삶의 가시 같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p18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쓰기’를 권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을 베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불편함을 이해한 뒤 조력자가 될 수 있는 책을 선택해야 한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책은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알아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자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쓰기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쓰기 위한 읽기’를 권한다.
“사막에서 사람이 죽는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방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제자리를 맴돌다 죽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수천 갈래의 길이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는 한 길을 정하고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p49
어쩌면 내 혀가 무거워진 이유도 읽기와 쓰기를 병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생각을 쓰기 시작하면서 방향이 보였고 불안함을 떨굴 수 있었다. 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불안하고 답답하다면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길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펜을 들어보라. 생각은 멈췄는데 손이 움직이는 마법을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쓰기에서 시작한다.
“쓰기의 출발은 당신이 가장 오래 해 온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당신이 가장 오래 해온 것,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