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좀 빠진, 한 템포 지난 퇴근 시간이었다.
자리가 없는 지하철을 타면 나는 서 있는 자세가 늘 똑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약간 허리를 앞쪽으로 내밀고, 짝다리. 그날도 같은 자세로 피곤한 몸을 지하철 손잡이에 기댄 채 초점 없는 눈동자를 지하철 창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어맛! 어떡해, 죄송해요!”
내 앞의 여자가 왠지 모르게 깜짝 놀라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나는 이분이 왜 이러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뺐다.
“제가, 계신 줄 모르고 휴대폰 보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여자가 너무 미안하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 여성의 호들갑에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왜 미안하지? 아는 사람인가?’
잠시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을 때, 여자가 몸을 돌려 내 옆으로 섰고 비로소 핑크색 시트가 내 눈에 인식되었다. ‘임산부석’이었다. 그 시절은 바닥부터 구역 전체가 분홍색이 아닌, 그저 좌석 시트 하나만 핑크색인 시절이었다.
“아... 어, 아니에요! 저 금방 내려요.”
여성이 나를 오해했음을 알아채자마자, 나는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이 여성의 적의 없는 순수한 배려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임산부가 아니라고 그냥 배가 나온 것뿐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앉아서 가세요. 죄송해요.”
내가 앉기 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둘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너무 미안해하는 여성의 배려를 계속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대학 연극동아리 출신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배를 쓸어 잡고, 오른손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수줍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임산부석에 무거운 몸을 앉혔다. 그래야만 기승전결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제야 여성은 안심된다는 듯이 미소를 보였고, 사람들도 기대했던 결말을 봤다는 듯,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제 문제는 나였다.
나는 그저 배가 나온 것뿐인데, 진짜 임산부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에 계속 좌불안석이었다. 하여, 두 정거장이 지난 후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여성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열리는 차 문 밖으로 쏟아지듯 내렸다. 열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약 두 칸 정도 앞으로 걸어가는 치밀함도 보였다. 열차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쯤, 나는 기존에 탔던 칸 보다 더 앞에 다시 자리를 잡고 섰다. 아,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열차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배에 힘을 주고 열차에 올랐다. 숨쉬기가 다소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선한 사람의 양보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메소드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