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하철에서 임산부가 되었다

by 강작

사람이 좀 빠진, 한 템포 지난 퇴근 시간이었다.


자리가 없는 지하철을 타면 나는 서 있는 자세가 늘 똑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약간 허리를 앞쪽으로 내밀고, 짝다리. 그날도 같은 자세로 피곤한 몸을 지하철 손잡이에 기댄 채 초점 없는 눈동자를 지하철 창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어맛! 어떡해, 죄송해요!”


내 앞의 여자가 왠지 모르게 깜짝 놀라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나는 이분이 왜 이러나 싶어서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뺐다.


“제가, 계신 줄 모르고 휴대폰 보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여자가 너무 미안하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 여성의 호들갑에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왜 미안하지? 아는 사람인가?’


잠시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을 때, 여자가 몸을 돌려 내 옆으로 섰고 비로소 핑크색 시트가 내 눈에 인식되었다. ‘임산부석’이었다. 그 시절은 바닥부터 구역 전체가 분홍색이 아닌, 그저 좌석 시트 하나만 핑크색인 시절이었다.


“아... 어, 아니에요! 저 금방 내려요.”


여성이 나를 오해했음을 알아채자마자, 나는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이 여성의 적의 없는 순수한 배려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임산부가 아니라고 그냥 배가 나온 것뿐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앉아서 가세요. 죄송해요.”


내가 앉기 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둘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너무 미안해하는 여성의 배려를 계속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대학 연극동아리 출신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배를 쓸어 잡고, 오른손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수줍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임산부석에 무거운 몸을 앉혔다. 그래야만 기승전결이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제야 여성은 안심된다는 듯이 미소를 보였고, 사람들도 기대했던 결말을 봤다는 듯,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스크린샷 2026-04-29 160726.png *〈AI 생성 이미지 · ChatGPT〉



이제 문제는 나였다.


나는 그저 배가 나온 것뿐인데, 진짜 임산부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에 계속 좌불안석이었다. 하여, 두 정거장이 지난 후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여성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열리는 차 문 밖으로 쏟아지듯 내렸다. 열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약 두 칸 정도 앞으로 걸어가는 치밀함도 보였다. 열차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쯤, 나는 기존에 탔던 칸 보다 더 앞에 다시 자리를 잡고 섰다. 아,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열차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배에 힘을 주고 열차에 올랐다. 숨쉬기가 다소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선한 사람의 양보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메소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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