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안 챙긴 두 남자와 머리맡의 쪽지 한장
엄마가 칠순이면 나는 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그 충격을 헤아릴 새도 없이, 엄마의 칠순 잔치가 끝났다. 준비한 선물이 엄마 마음에 딱 들어, 주인공은 행복해했고, 이모와 삼촌들도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사전 답사 없이 예약한 뷔페도 식구들의 입맛에 딱 맞았으니, 100일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한 나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적인 칠순 잔치였다. 그리고 바로 딱 다음날은 전날 잔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맞이한 내 생일이었다.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랑 15년을 같이 산 남편도, 애지중지 키운 중학생 아들도 엄마 생일을 ‘알고도’ 그냥 지나친 것이다. 평소에도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챙기지 못하던 우리 집 남자들이었기에 모르고 넘어갔을 때는 ‘몰라서 못 챙겼지’라는 위로라도 했는데, 알고도 안 챙기는 걸 보니 갑자기 약이 오르고 부아가 치솟았다.
물론, 하루 전날 할머니 칠순 잔치를 거하게 한 탓도 있을 거다. 하지만 ‘칠순 잔치 크게 했으니 다음날 엄마 생일은 조용히 지나가도록 하자’라는 판단은 당사자인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자의적인 판단하에, 밤 9시가 다 되도록 초를 켜주지 않은 두 남자에게 나는 크게 실망했고, 괜히 내 존재가 가볍게 여겨진 듯해 서운함이 커졌다.
내 생일날 밤, 아들은 밤 9시가 넘어 복귀하면서, 초콜릿을 하나 사 왔다. 화가 났던 나는 밖에서 놀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빽! 지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운 상태였다. 열받아서 잠이 안 오는데, 아들 얼굴 보면 또 속없이 삐칠 것 같아서 자는 척을 하였더랬다.
"부스럭 부스럭."
머리맡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아들이 뭔가를 하는 것 같았다. 이 부스럭대는 소린 뭐지? 꽃일까? 이 시간에, 일요일인데? 아닌가, 과자 봉지인가...? 자는 체를 하는 중이라 일어날 수도 없고, 부스럭 소리가 끝날 때까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엄마가 ‘깨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아들을 위해 나도 눈을 뜨지 않으려 애썼다.
다음 날, 머리맡에 놓인 작은 초콜릿과 쪽지를 발견했다. 여러분은 중3 아들에게 쪽지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엄마, 일단 엄마 생일인데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얼굴 마주하기가 무서워서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엄마 자고 있더라.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이거라도 받아주면 좋겠어.
미안했고 사랑해.
쪽지를 본 후, 나는 두 가지 포인트에서 팍 꽂혔는데, 하나는 ‘무서워서 조금 늦게 들어왔다’라는 부분이었고, 또 하나는 ‘사랑해’ 라는 부분이었다. 첫 번째 포인트에서는 가슴이 철렁했고, 두 번째 포인트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 날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생일 안 챙겨줬다고 아들에게 화를 내는 내가 너무 유치하고 소심하게 생각되었다. 아들이 그 때문에 무섭기까지 했다니, 이제는 반대로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사랑해’. 중3 아들 손끝에서 엄마를 향한 ‘사랑해’라는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래, 그 말 하나면 된다. 그리고 아들이 눈치 있게 그걸 해주었구나.
다음날, 예민했던 아이에게 엄마의 모습을 편지로 사과했다. 엄마의 기분, 느낌, 그리고 아들에게 쪽지를 받은 후 들었던 감정까지.
내가 친정엄마의 칠순을 성대하게 치렀던 이유는, 그만큼 엄마를 사랑해서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번 생일에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서운했던 것 같다. 그래도, 늦게라도, 내 마음을 알아준 사람이 있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 그 사람이 아들이었다.
저녁에 남편이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들어왔다. 어제 못 켠 내 생일 초를 켜주려는 심산이었다. 남편이 독서실 간 아들을 불러들여, 촛불을 켰다. 우리 가족들은 생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내 생일 하루 지난 날은 우리 막내 제부의 생일이었다.
“내 생일은 지나갔고, 제부 생일 축하한다고 할까?”
땐땐한 기분에 한마디 했지만, 이내 후회했다. 너무 뒤끝 있는 말이었다. 무딘 남편이 하루 늦게 사온 케이크였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 지난 조촐한 생일 초가 켜졌다.
”엄마 소원 안 빌어?“
아들의 말에, 엄마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대답했다. 중3 아들 가진 부모 중에 ‘사랑해’라는 말을 접해본 부모가 몇이나 될지. 나도 한 무뚝뚝한 사람인지라, 두 사람에게 화내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은 끝내 입술 끝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는 케이크를 한 조각 한 조각 잘라 여전히 조금은 미운 내 남편과 아들 앞에 놓았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면 내 진심도 전해졌으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