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가 쏘아올린 작은 공
45분째 걷고 있다.
입이 마르고, 이젠 무슨 생각으로 걷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바람이 한 번 휘익 불더니, 하늘에서 벚꽃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날리는 꽃은 깃털 같았고, 그 깃털 따라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걸었다.
‘네이버 지도’ 걷기로 검색해 보니, 회사에서 집까지 약 1시간 정도면 되었다. 못 걸을 수준은 아니었다. 생선가게에서 점심 특선으로 먹은 고등어가 너무 맛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아들 먹이겠다고, 노릇노릇 잘 익은 고등어를 한 마리 포장했는데, 자동차 이부제 시행 중이라 오늘 차가 없는 날인 걸 깜빡한 거다. 비닐 두 겹으로 꽁꽁 싸맸지만, 식은 고등어의 비린내는 막아내지 못했다. 집까지 어떻게 가져갈지가 문제였다.
‘이걸 들고, 버스를 타? 말아? 치킨이면 눈 딱 감고 탈 텐데, 고등어는 좀...’
하여, 나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좀 더 드라마틱 한 구성을 위해 갑자기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비도 내려줬다. 오른손에는 겹겹이 싼 고등어를, 왼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딱히 걷기 힘든 옷차림은 아니었다. 즐겨 입던 통이 넓은 청바지를 입었고, 아직 길이 들지 않은 새 슬립온을 신은 상태였다. 혹시 모를 뒤꿈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양말 안쪽에 대일밴드도 꼼꼼하게 붙여준 상태였다.
직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언덕을 넘어서, 또 직진. 계속 직진하다 보면 우리 집이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면 차로 15분 거리인 이 코스를, 1시간 걸어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막막했다. 그래도, 이왕 마음먹었으니 즐겁게 걷자고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내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고, 직관적인 목표 아닌가.
차로 다닐 땐 못 보던 것들을 마주하는 게 즐거웠다.
길이 없는 줄 알았던 곳에, 보행자를 위해 만들어 둔 오솔길이 있음을 알았다. 대형 갈빗집의 갈비구이 냄새가 저녁을 거른 내 코를 자극했다. 공사 중인 곳을 지나가자, 풀냄새, 흙냄새, 비 냄새가 섞여서 시골 냄새가 났다. 간혹 식어가는 고등어 비린내가 자꾸 나를 현실로 돌려놓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냄새 한올도 빠져나오지 말라는 듯 고등어를 꽁꽁 묶은 손을 더 꽉 쥐었다. 빗방울과 끌어안고 떨어지는 꽃잎들이 예뻤다. 이런 기분이면, 매일 걸어서 출퇴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나 지났을까. 즐거움 뒤에 살짝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걱정했던 새 신발은 문제가 없는데, 늘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문제였다. 통이 넓었던 지라, 걸을 때 내 허벅지와 무릎을 자꾸 탁탁 건드렸고, 같은 보폭과 리듬의 걸음이 반복되자 청바지 안감과 닿는 부분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게 이런 걸까. 오래 걷다 보니, 빗줄기가 허벅지에 물들기 시작했다. 눅눅해진 청바지의 결은 더 거칠게 느껴졌고, 마치 사포가 내 살을 긁는 느낌마저 들었다.
‘점점 아픈데, 이따가는 못 걸을지 몰라. 지금이라도 눈 딱 감고 버스를 탈까?’
‘아니야, 이왕 걷기로 했는데 포기하지 말자. 피가 나는 것도 아니잖아!’
머릿속에서 ‘엄살이’와 ‘건강이’가 싸우기 시작했다. 집 앞으로 가는 버스가 내 옆에 정차했다.
‘올라타! 올라타!!’
‘엄살이’가 부추겼지만, 아직은 ‘건강이’의 지분이 더 컸다. 나는 '건강이'의 응원을 받으며 반대편 길로 이동했다. 못 이기는 척 버스를 타지 않기 위해서였다. 회사 쪽으로 달려오는 버스를 마주 보며, 나는 집으로 계속 걸었다.
한 시간 가까이 걸었을까. 그제야 내가 대체 이 짓을 왜 시작했나 싶었다.
‘멍청아, 운동을 하려면, 집에 빨리 가서 운동복 제대로 차려입고 할 일이지!’
바보 같은 선택을 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허벅지의 모든 모공이 열려서 ‘나 죽네!’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횡단보도에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기라도 하면 후끈함이 바지 위로 훅훅 올라왔다. 너무 아프면 뛰기도 했다. 뛰면, 몸이 더 들썩여서 바지의 쓸림이 아픈 곳을 약간 비껴갔다. 풀냄새, 고기 냄새는 무슨! 염병, 다 필요 없었다. 내 모든 신경이 허벅지에 쏠려서 그저 빨리 집에 가고픈 마음뿐이었다.
집 앞에 다다랐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자 걸음이 빨라졌고 이제 곧 바지를 벗어버릴 수 있다는 행복감도 몰려왔다. 허벅지가 뻘게지든 피가 나든 상관없었다. 이 고행이 끝나간다는 사실과, 내가 해냈다는 충족감, 아들에게 자랑할 일 하나 생겼다는 뿌듯함 때문에 몸에서 도파민이 터지는 것 같았다.
“나 왔어~!!”
집에 오자마자 바지를 벗어버렸다. 소중하게 들고 온 고등어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허벅지가 너무 아리고 쓰려서, 손으로 허벅지를 감쌌다. 빨개졌을까, 약을 발라야 할까? 천천히 손을 떼보았다.
‘뭐야, 왜... 괜찮아?’
걷는 내내 나에게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던 허벅지가 나에게 ‘속았지?’ 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리만치 피부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분명히 걷기 불편할 정도로 아팠는데, 그건 그저 감각이었던 걸까.
회사에서 집까지 약 만보를 걸으며 점점 커지는 고통에, 나는 적어도 오천 번은 흔들렸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살을 긁어대는 고통이 일었다. '엄살이'는 당장 이 행군을 멈추라 했지만, 막상 고비를 넘기고 돌아본 자리에는 예상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강했고, 나의 엄살은 행군을 좀 더 찰지게 만드는 양념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