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에 나타난 보아뱀

코끼리를 삼킨 남편을 안마기로 다스렸다

by 강작

남편이 컴퓨터방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와 거실에 대(大) 자로 뻗었다.


“나 허리랑 어깨가 너무 아파, 안마기 좀 해줘.”


집에 전신 안마기는 없고, 손 안마기가 있었다.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것임에도 대가리가 원체 무거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편이 안마기를 좀 잡아달라고 했다. 내가 ‘무거워서 들고 있기는 힘들다’라고 하니, 남편이 엎드리며 자기 등 위에 올려놓고 안마를 해달라고 했다. 그 이후부터 둘이 힘을 합쳐 겨우 굴러가는 환상의 마사지숍이 열렸다.


주 고객은 남편이었다.

남편이 엎드리면, 내가 그 위에 안마기를 올려 작동시켜서 진공청소기로 거실을 훑듯이 안마기로 남편의 뒤태를 훑는다. 조금만 지나도 무게 때문에 팔이 아팠지만, 안마기의 대가리 방향을 틀면서 일부러 남편을 때릴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도 퍽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엎드린 남편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배가 많이 나온 채로 엎드리니, 허리가 불룩 솟아올랐다. 이 모양 어디서 봤는데... 혹시, 보, 보아뱀?



소파 옆의 침대처럼 펼쳐진 풍경.png *〈AI 생성 이미지 · ChatGPT〉



“당신 지금 되게 보아뱀 같아.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


손가락으로 액자를 만들며 감상평을 얘기하자, 옆에서 아빠를 구경하던 아들이 빵 터졌다. 엄마의 절묘한 비유가 탁월했는지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해 쿡쿡대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하긴 남편은 오빠였던 시절부터 그리 날렵한 몸매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몸집이 이렇게나 커질 거라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의 결혼 10년 후 모습을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 아들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 모른다.


“이상한 말 하지 마아...”

“아니, 지금 여기서 이상한 건 당신 몸뿐이야.”


안마기를 켜는 바람에 뒷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위이이잉~~ 돌아가는 손 안마기의 대가리를 보아뱀의 불뚝 솟은 허리춤에 내리꽂았다. ‘코끼리 죽어라!’ 하는 마음으로, 위로 갔다가 아래로, 다시 위로 아래로. 소화 안 되는 보아뱀의 윤곽을 따라 수차례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도 손목에 점점 힘이 빠졌다.


우리 집 어느 누구도 코끼리를 허락한 적은 없지만, 갑자기 한자리 차지하게 된 이 코끼리도 나름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남편의 비포장도로를 세 번 왕복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코끼리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겼다. '나 몰래 간척사업이라도 했나?' 싶은, 이 넓어진 면적도 다 그의 젊음과 맞바꾼 것이다. 하여, 평소엔 안 해주던 옆구리와 발목까지 꼼꼼하게, 10분이나 더 안마기를 돌려주었다.


애교가 반푼어치도 없는 아내 입장에서 베푼 나 최상의 서비스였다.






** 매주 수요일 저녁 예민한 관찰자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어떨지 궁금하실 분들이 혹시 계실까봐 남겨둡니다. 오늘은 퇴근하시는 길에 경험한 진한 사람냄새를 담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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